문장웹진(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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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민중의 아픔을 껴안은 모더니스트
고운기: 김수영과의 만남 이후에도, 김수영은 ‘후반기’동인은 아니지만, 문단에도 박인환과 김수영의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요. 박인환에 대해 김수영이 비판을 했는데, 박인환은 김수영에 대해서 비판을 하지 않았더군요. 실재는 어떠했는지요? 김규동: 김수영은 민중에 대한 감정이 거리가 없는데, 박인환은 민중과 나와의 거리가 있습니다. 책에서 배운 모더니즘의 분량이 많은 데 비해 김수영은 생활에서 가진 모더니즘이 풍부하고 감정이 많습니다. 박인환은 너무 서구화되고 김수영은 한국적인 모더니즘입니다. 김수영은 양계를 했는데 노동을 하면서 일상 생활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인환은 취직을 한 적도 없고, 민중하고 밑바닥 생활의 접촉이 없었습니다. 4?19 이후까지 박인환 시인이 살아 계셨어도 현실에서 김수영처럼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서구적인 문체, 서구적인 사고, 서구적인 속도?문명?변화 이런 것에의 흥미이지, 김수영의 땀 냄새 나는 흥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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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경성탐정록 (제1회: 운수 나쁜 날)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까의 순사보와 김수영 학생이었다. 김수영은 경찰서는 처음이란 듯이 불안한 얼굴로 쭈뼛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쪽은 제 고등학교 후배인 김수영이라 합니다. 지금은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 학생으로 겨울방학을 맞아 조선에 돌아왔습니다." 설홍주가 김수영을 소개하자 레이시치 경부는 그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아, 그래? 그런데 이 친구가 이번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이제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설홍주는 김수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전보로 가져오라고 한 건 가져왔나?" "아, 예. 허 군이 찍힌 사진은 네가 필름(네거티브 필름)까지 모두 다 챙겨왔습니다." 김수영은 손에 들고 있던 사진 봉투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거기서 한 장의 사진을 골라 설홍주에게 내밀었다. "예, 이게 제일 잘 나온 사진입니다." 일본 신사를 배경으로 학생복을 입은 젊은이가 손으로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독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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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내 눈 아래 다시 생긴 점은 구태여 빼지 않을 작정이다
내 눈 아래 다시 생긴 점은 구태여 빼지 않을 작정이다 성미정 눈 밑의 점은 눈물점이란 얘기를 듣고 난 후 빼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난 드라이한 사람이고 눈물 따윈 내게 어울리지 않으니까 구월 어느 날 비뇨기과에 가서 (우리 동네는 비뇨기과가 피부과도 겸하고 있다) 살타는 냄새와 함께 점을 뽑았다 그런데 아직 여름 햇살이 남아 있는 탓인지 주근깨처럼 엷게 눈 밑의 점이 다시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나는 김수영이 그러했듯 내 눈 아래 다시 생긴 점을 구태여 빼지 않을 작정이다 김수영은 모든 곡은 눈물이고 눈물은 시인의 장사 밑천이라 빼지 않겠다고 시인다운 이유를 댔지만 나는 단지 그 비뇨기과에 다시 가기 싫고 살타는 냄새를 두 번 맡고 싶지 않다는 전혀 시인답지 않은 이유로 빼지 않을 작정이지만 어쨌든 다시 빼지 않겠다는 점에 있어선 김수영과 다를 바 없고 엷은 주근깨처럼 눈물점이 올라오고 있는 건 그래도 내게 시인의 마음이 엷게나마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