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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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자살심판관
김안: 네, 알겠습니다. 오르디나토르: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여섯 심사관의 이름과 신상은 블라인드 처리되어 현재 착석한 자리에서 시곗바늘 방향으로 모노, 디, 트리, 테트라, 헥사, 펜타로 지칭될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에 대한 질문이나 이의가 있습니까? 김안: 아니오, 없습니다. 오르디나토르: 그럼, 현재 2046년 6월 6일 오후 2시 13분. 자살허용심판관 선정을위한 최종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노님, 질문을 시작해 주세요. 모노: 대한민국 최초의 자살허용예비심판관 후보 1번, 김안. 1986년 경기도 파주 출생. 2010년에 사법고시 수석 합격 이후 2040년 재판관 역임. 2043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청렴한 재판관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 수상. 그런데 돌연 2044년에 판사를 그만두고 자살고위험군을 보호하는 생명존중연구소에 소장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2년 가까이 생명존중연구소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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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운동회
운동회 김안 운동회 날이었다 하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팬티만 걸치고 있었다 엄마는 왜 오지 않을까 나는 온종일 철봉에 매달려 있었다 줄다리기는 팽팽했다 개 한 마리가 철봉 아래에서 다리를 쳐들고 오줌을 누고 있었다 나도 그 개 뒤에서 다리를 쳐들고 오줌을 누었다 내가 일어나도 개는 계속 오줌을 누고 있었다 오른발로 개의 엉덩이를 뻥 찼다 개가 내 오른발을 물고 도망쳤다 줄다리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나는 철봉 기둥에 기대어 앉아 교과서를 꺼내 들었다 돋보기로 검은 글자들을 태우고 있었다 텁텁한 글자의 재를 먹었다 남은 종이 쪼가리를 잘게 찢어 머리 위로 뿌렸다 종이 쪼가리가 이빨이 되어 투두둑 떨어졌다 이빨들이 구더기가 되어 팬티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는 왜 오지 않을까 아이들은 온종일 줄다리기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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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딸꾹이는 삶
딸꾹이는 삶 김안 일상을 대본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희극과 비극이 딸꾹질처럼 멎지 않고, 물 한 컵 들이켜고, 이불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선 이제 내게 닥쳐올 불행들의 목록을 생각해 보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고. 하긴 유행 지난 철학서처럼 사는 삶을, 읽지 못해 무릎께만큼 쌓인 잡지들처럼, 결국에 버려질 삶을 굳이 옮겨 적을 필요야 하다가도, 하물며 시쯤이야 하다가도, 아빠, 바람 불어, 머리가 자라는 것 같아― 가을,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서 그 앞에 앉아 있는 둥근 등의, 둥근 머리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의 소리를 아, 나는 평생 벗을 수가 없겠구나, 이 몸뚱이에 붙은 작디작은 몸뚱이의 소리를, 말에 접 붙은 아직 문법 없는 말 아닌 소리를, 하다가도, 이건 내 몫이 아닌 것도 같고, 때론 다른 이의 삶만 같아서― 비겁하게 거룩하구나, 우리들의 잘 길들여진 분노와 행복처럼, 간만(干滿)처럼, 강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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