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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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지는 것은 노을의 일 - 수국이 피면 바다에 같이 가요 외 1편
지는 것은 노을의 일 김안녕 허기진 저녁이면 솥단지 선짓국이 먼저 끓는다 밥물 끓듯 강물 뒤척이고 귀 어두운 여섯 식구 대신 들개 우는 소리 서녘 하늘로 퍼져 가는 요령소리 슬픈 것들은 모르고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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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수국이 피면 바다에 같이 가요 외 1편
수국이 피면 바다에 같이 가요 김안녕 겨울에 했으면 하는 일, 겨울 길은 살살 걷기 연한 빛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기 흩어진 털실을 모아 두기 흩어진 빛을 찾아 뜨개질하기 노랑 귤을 소쿠리째 사서 겨우내 입안에서 시큼하게 굴려 보기 일호선을 타고 가다 문득 내려 망월사에 드는 것 기별 없이 마음을 주는 것 가서 아득한 풍경소리만 듣다 오는 것 들어도 듣지 않는 것처럼 그저 있는 것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고 한번은, 잡아 보기도 하는 것 고기를 줄이고 말을 줄이고 휘파람과 풀때기 눈물은 늘리기 세상에 없는 노래를 지어 부르다 낮술에 취하기 몽롱한 목소리로 돌멩이에게 전화하기 수국이 피면 바다에 같이 가자 말한 사람을 유월이면 수미감자 한 상자씩 보내는 사람을 구순 노모의 휠체어를 종일 밀며 가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 그리워하지 않는 일 종내 내가 그리움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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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운동회
운동회 김안 운동회 날이었다 하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팬티만 걸치고 있었다 엄마는 왜 오지 않을까 나는 온종일 철봉에 매달려 있었다 줄다리기는 팽팽했다 개 한 마리가 철봉 아래에서 다리를 쳐들고 오줌을 누고 있었다 나도 그 개 뒤에서 다리를 쳐들고 오줌을 누었다 내가 일어나도 개는 계속 오줌을 누고 있었다 오른발로 개의 엉덩이를 뻥 찼다 개가 내 오른발을 물고 도망쳤다 줄다리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나는 철봉 기둥에 기대어 앉아 교과서를 꺼내 들었다 돋보기로 검은 글자들을 태우고 있었다 텁텁한 글자의 재를 먹었다 남은 종이 쪼가리를 잘게 찢어 머리 위로 뿌렸다 종이 쪼가리가 이빨이 되어 투두둑 떨어졌다 이빨들이 구더기가 되어 팬티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는 왜 오지 않을까 아이들은 온종일 줄다리기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