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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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케이보케이
김유성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뒷좌석의 여자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김유성은 왠지 만족스러웠다. *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난데없이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 김혜정의 말이 뚝 끊어지자 한지수는 내심 기뻤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김혜정의 장광설을 최대한 귀담아듣는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실신하기 일보 직전의 몸으로 술까지 마셔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담당하고 있는 소송사건에 관한 얘기도 아니고, 별로 애써서 알아들을 필요도 없었다. 절반은 꼰대질이고 절반은 자기자랑이었다. 아니면 그 두 가지가 별다른 경계 없이 마구 뒤섞인 헛소리였거나. 굳이 하나하나 주워담아 분류해주고 싶지 않았다. 김혜정은 살아남으려면 ‘내부수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바깥에서 클라이언트를 물어오기 어렵다면 로펌에 있는 사백 명 남짓한 다른 변호사들이 물어온 사건에 함께 투입되는 식으로 자기 밥그릇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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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생존 게임의 서글픈 레짐
[문학리뷰(소설)] 생존 게임의 서글픈 레짐 - 최유안, 「거짓말」/ 장강명, 「대기 발령」/ 김유담, 「이완의 자세」 김영삼 1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생존을 위협하는 각종 재난과 사건들을 목도해 왔다. 그 참혹한 서사의 리얼리티가 위협적인 이유는 생명정치 관리 시스템의 파열음들이 현 세계의 풍경과 구조에 앞으로도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생명정치는 곳곳에서 실패의 신음을 생산하고 있다. 계급, 세대, 지역, 인종, 젠더 등의 뇌관을 건드리면서 작동하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이 그 증거다. 또한 결혼, 출산, 육아, 취업 등 생의 과정 곳곳에 놓인 높은 문턱은 개인들을 생존과 경쟁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내몰고 있다. 주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경계에 대한 거부와 두려움에서 생산되는 기호들이 곧 현시대 우리 삶의 아비투스이며 기표이며 서글픈 레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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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두 번째 삶
그 뒤를 서서히 따라가는 박형우와 김유성. 박형우는 고무망치를 들고 있고 김유성은 한 주먹의 자갈이 든 수건을 허공에 빙빙 돌리고 있다. 둘 중 하나가 말했다. "미친 새끼. 죽고 싶어서 별짓을 다하네." 다른 한 명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줘." 그때 나는 부러진 밀대를 손에 쥐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들 사이 어딘가에 서서 절뚝거리는 지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궁금한 것이 있다. 도대체 지운은 어떻게 녹음기를 사용할 생각을 했을까? 더 궁금한 건 지운의 호주머니에 녹음기가 있다는 사실을 박형우는 어떻게 안 걸까? 지운은 난간에 서서 나를 봤다. 그리고 뛰어내렸다. 두 손으로 녹음기를 심장처럼 움켜쥔 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머리가 땅에 부딪치는 그 순간까지도 지운은 맞잡은 두 손을 풀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지운은 뭔가 달랐다. 아무 말도, 아무 대꾸도, 않던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