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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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글틴, 윤석정 멘토와 김가은 멘티의 만남
김의 필력이 일기에서 나온 듯하다. 김 : 나는 일기에서 시가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시에서 일기가 나오기도 한다. 요즘은 일기 사이에 있는 메모가 시로 발전한다. 윤은 어디서 시를 얻어오는지 궁금하다. 윤 : 대체로 일상생활에서 시를 얻는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인데 시적인 찰나가 있다. 오늘처럼 김을 만난 뒤 김과 겹쳐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시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내 마음에 걸린 착상을 메모하고 시로 재구성한다. 아마도 김이 시를 얻어오는 일기나 메모처럼 말이다. 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으니까. 글틴에서 활동을 시작할 당시 김은 주관적이고 감정이 이입된 시를 썼는데 최근에는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인 시를 쓰고 있다. 김 : 문보영 시인의 시집 『책기둥』의 영향을 받았다. 읽고 또 읽고 있다. 객관적인 시여서 독자로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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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남은 그림자
김 부장은 작심했던 말을 꺼냈다. “이번만 용서해 줘. 나 하나 여기서 쫓겨나는 건 괜찮아. 그럼 우리 애들은 어떡해? 이번 한 번만 조용히 넘어가면 두 번 다시 귀찮게 안 할게.” “이러지 마세요. 이럴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한사코 버텼다. 역시 힘으로는 그 덩치를 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깐 고민했다. 솔직히 은경 씨와 손을 잡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나 역시 직속 상사인 김 부장과 회사의 압박을 버텨내야 했다. 그건 아마도 너무나 힘든 일이 될 터였다. 그렇다고 그냥 호락호락 물러나기도 싫었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김 부장으로부터 어떤 담보물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 각서를 써주실 수 있나요?” 김 부장은 고개를 들고 반색했다. “각서만 써주면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 부장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털었다. 그동안 나는 종이와 펜을 김 부장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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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상공단 김영덕 씨
사상공단 김영덕 씨 오도엽 부산지하철 일호선 노포동에서 출발한 첫차가 남산동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다섯 시 십삼 분 어김없이 푸른 작업복 잠바를 입은 김영덕 씨를 만난다 에나멜구두는 어김없이 검게 번쩍인다 국수공장 봉제공장 신발공장 떠돌다 사상공단에 자리 잡고 스무 해 온종일 두툼한 스케일과 붉은 녹을 우우웅 울어쌓는 기계로 벗기며 살아 온 김영덕 씨 예순넷이 되어도 어김없이 푸른 작업복을 입고 첫차를 탄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잎사귀는 떨어졌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가지가 떨어졌다 손을 떠나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당신이 처음으로 손을 떠나 우우웅 우우웅 요란스레 홀로 춤을 추던 순간 김영덕 씨도 허공을 날며 춤을 췄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왼다리는 떨지 않았다 어김없이 푸른 작업복을 입고 어김없이 검게 빛나는 에나멜구두를 신고 어김없이 첫차를 타러오는 김영덕 씨의 발걸음 소리 오른발 구두가 딱 하며 바닥을 딛고 나면 왼다리는 떨지 않았던 그날을 떠올리며 바르르 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