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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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셰퍼드
김은 회초리를 치켜들었다가 개들의 머리를 재빨리 후려치는 시늉을 했다. 개들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턱을 흙바닥에 붙인 채 납작 엎드렸다. 개들의 행동에 김은 다소 만족한 표정으로 명견클럽에서 가져온 개 사료를 배낭에서 한 움큼 꺼내 그 앞에 뿌려 주었다. 개들은 마른 나뭇잎과 풀을 뒤져 한 알의 사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웠다. 개들을 향해 회초리를 치켜든 김은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지금부터 내 얘기 똑바로 들어라. 이제부턴 내가 느그들 주인이다. 조금 있다가 다시 출발할 텐데 절대 뛰지 마라. 만약 아까처럼 경거망동하면 무조건 맞는다! 알아들었냐?” 회초리가 다시 머리로 다가가자 개들은 땅바닥에 엎드렸다. 김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초리를 거두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기구한 처지에 빠지게 됐는지…… 이게 다 느그들 주인 놈 꾐에 넘어간 탓이야. 씨발, 그게 어떤 돈인데…….” 김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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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산란탑
김은 황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몇 번 내저었다. 태훈의 근처까지 왔을 때 대뜸 정 씨가 말했다. “오늘 밤에 돌아갑시다. 여긴 역시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에요.” 화가 난 것인지 겁을 집어먹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태훈과 김은 무턱대고 물을 수는 없어서 그의 눈치를 살피기로 했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정 씨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김은 그를 떠 보려는 듯 일은 어땠냐는 둥 자신이 일한 곳은 진창이어서 몹시 힘들었다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태훈은 함금사니를 떠올렸다. 물을 뜨듯 퍼 담기만 하면 되는 엄청난 양의 사금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태훈과 김은 여러 사업 방식을 따지며 이 마을의 비밀에 대해 의논하는 중이었다. “내 말을 못 믿겠지만.” 정 씨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입을 열었다. 김이 무엇이든 말해 보라며 재촉했다. “아닙니다. 어차피 나는 나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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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나는 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김은 라디오와 함께 생활했다. 라디오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알게 되고 음악에 위로받는 게 좋은 듯했다. 라디오를 듣다가 큰 소리로 웃기도 했고 가끔은 욕설도 내뱉었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때면 노래를 따라하거나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입술을 새 주둥이처럼 내밀고 휘파람을 부는 김은 사포질에 여념이 없었다. 대패질한 나무의 표면을 부드럽게 하는 사포질은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했다. 김은 편백나무 자투리로 쟁반을 만드는 중이었다. 언제부턴가 김은 소품을 만들어 쏠쏠하게 부수입을 올렸다. 주문이 늘자 점점 과감해졌다. 더러 나무 원판에도 손댔다. 박이 눈총이라도 하면 김은 당당하게 말했다. “형님이야 보상도 받았고 쯩도 있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귀에 연필을 꽂고 사포질을 하는 김은 어느새 베테랑이었다. 박은 강 사장이 주문한 장롱의 표면을 만졌다. 오랜 세월을 거슬러온 나무의 숨결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