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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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난 선배하고만 하고 싶은데
하얀 연기 같은 수염을 달고선, 걸걸한 목소리로 항아리나 캔 커피의 요정에게 따질 것이다. 야, 너희들 자꾸 영역침범 할래? 마스터는 그야말로 이 홀덤펍의 요정이었다. 외모는 추레하고 말투는 툴툴대지만, 속내는 깊고 넓었다. 들어선 나를 발견한 마스터는 묵묵히 바 쪽으로 향했다. 별다른 말 없이도 마스터는 내 취향의 칵테일을 갖다 줄 것이다. 감미롭고 달콤한 것. 오늘은 조건 하나 더. “무알콜로 해줘요, 오늘은.” 고개를 까닥이는 마스터를 확인한 뒤 테이블로 향했다. 한 사람이 의자째로 몸을 돌렸다. 다시 만났던 날에는 몰랐다. 보면 볼수록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보다 왜소했다. 여전히 넓은 어깨였지만, 그랬다. 반가운 건 같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선배에게 마주 손을 흔들었다. 뭔가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순간이었다. 허공의 먼지마저 솜털같이 느낄 만한 포근함에 싸인 나를, 나머지 한 사람도 돌아보았다. 재떨이의 요정 같은 노인이 걸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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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안녕, 과일프렌즈
“모둠 과제 같이할래? 나 ‘페이스’ 연습했거든.” 하윤이 말에 수연이가 대답했다. “그래! 좋아!” 수연이는 하윤이와 함께 안무 연습을 하기 위해 복도로 나갔다. 뒤에서 오렌지, 사과, 바나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수연이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하윤이가 불러주는 이름이 더 부드럽고 다정했다. “수연아!” 열린 복도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참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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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이선생은 피곤하다.
나는 말로 할 테니까 너는 채팅으로 말해 그럼. 아까 그게 니가 아니라고? 지황 네. 이선생 이름을 보면 너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는데? 지황 저 진짜 아니에요. 이선생 야, 내가 처음부터 야단을 칠 수도 있었지만, 학생이 그럴 수도 있지 싶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장난으로 넘기려 했는데. 근데 끝까지 아니라고 할래? 지황 아 저 진짜 아니라구요. 이선생 나는 있잖아. 너의 사소한 실수를 웃으면서 넘기도록 배려도 해줬고, 그리고 이렇게 좋게 좋게 너의 잘못을 타이르려는 마음밖에 없어. 근데 끝까지 좀 너무하는데? 지황 진짜 억울해요. 이선생 그럼 누가 그러겠어? 지황 몰라요. 이선생 누가 하필 왕자지황이라고 하고 수업에 들어오겠냐고. 지황 억울해요. 이선생 너 진짜. 지황 신고할래요. 이선생 뭐? 지황 경찰에 신고할래요. 이선생 무슨 신고? 지황 사이버 모욕죄? 몰라요. 저 신고할래요. 이선생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데? 지황 범인을 잡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