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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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1960s-2020s 반(半/反)예측의 상상력 ②
니체의 『아침놀』을 비롯하여 플라톤, 쇼펜하우어 등 ‘위대한’ 철학을 섭렵한 작곡 전공생 먹점은 <팔도아리랑>에 전자음악을 매쉬업한 음악을 만들며, 용이한 섹스를 위해서는 적당한 코미디 영화를 트는 데도 주저가 없다. 실리콘 재질의 바이브레이터에 불과한 사물이 인간의 삶을 재단하는 이런 행태는 분명 희극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공산품 딜도치고는 썩 니체 같은 구석이 있다(물론 딜도는 니체의 가장 열등한 제자에 속할 터이다). 잠언의 형태로 발설되는 니체의 철학은 시종일관 기독교에 기반한 근대 이후 삶의 균일한 지평에 일조하는 동시대의 도덕과 지식을 거부했다. 그리고 니체는 이를 발판으로 인간의 궁극적인 ‘힘’을 끌어내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실리콘 재질의 바이브레이터로 태어났다고 해서 부여된 사용 가치에만 복무하며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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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존재의 영역으로부터 죽음을 몰아내는 천야일화(千夜一話), 박상륭 소설 읽기
『칠조어론』까지의 박상륭 소설 세계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과 함께 천상에 대한 지상의 우위를 설파한 니체 철학과 일정한 맥락을 같이 한다. 모성으로서의 대지에 대한 긍정, 영웅적 구도자 형상, 양극을 갖는 타원형으로 인식하는 우주의 질서 등은 니체의 대지주의, 초인, 영겁 회귀 등의 개념과 대동소이해 보인다. 하지만 이후 『산해기』와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에서 작가는 니체와의 뚜렷한 변별성을 명시한다. 두 작품은 노골적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패러디한다. 그리고 박상륭의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의 정신적 상징이라 할 독수리와 뱀을 제 손으로 죽이고 하산하여 처절한 파멸을 맞는다. 니체가 예찬한 초인의 장엄한 추락은 이제 진정으로 슬프고 쓸쓸한 몰락이 된다. 박상륭은 그저 니체와 동일한 대상을 비판했을 따름이지, 니체의 비판 모두에 전적으로 동조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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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제3회] 신성한 시간이 그립다
그러니까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을 때, 그는 우리 인간에게서 신성한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신이 죽었음을 선언한 것이고, 이제 우리 인간이 신성한 시간을 신으로부터 되찾아올 때가 되었음을 고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의 탄생과 도래란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에 신성한 시간을 풀어 놓은 인간의 탄생과 도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가 죽었다고 선언한 그 신은 죽지 않았다. 다만 변신했을 뿐이다. 죽은 신은 이제 자본으로 되살아나 오히려 일상 속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 세속의 시간을 송두리째 지배한다. 니체 이전에 정치경제 철학자인 마르크스는 화폐의 물신화를 제시했다. 화폐는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추앙받고 따라서 화폐를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리라는 완전한 착각이 자본주의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의식을 철저하게 장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