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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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책을 설계하는 사람들-출판기획자
선생님께서 그간 읽었던 책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무엇인요? = 니체의 책을 즐겨 읽어요. 재수 없죠! 그래도 할 수 없어요. 가장 인상 깊게 읽었으니까요. 정말 재밌거든요. 니체의 생각들을 접하면서 제가 엄청나게 변했어요. 하나만 소개하죠. 니체의 작품 중에 이런 말이 나와요. 강한 자와 약한 자에 대해서요. 니체는 강한 자를 “자신을 긍정하는 자”라 했구요. 약한 자는 “타인을 부정하는 자”라 정의했죠. 이 말을 접하는 순간 저는 저 자신을 긍정하면 할수록 강한 자가 될 수 있는 거가 되는 거잖아요. 사실 강한 거시기 컴플렉스가 있거든요. 우리 관념에서 강한 자는 ‘카리스마’잖아요. 그리고 항상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잖아요. 이때 니체의 말은 전복(뒤짚기)였어요. 《도덕의 계보》 《선악을 넘어서》 그리고 《천개의 눈, 천개의 길》(고병권 지음) 등이 인상 깊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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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제3회] 신성한 시간이 그립다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생각이 현대인들에게서 신성한 시간을 앗아가 버린 주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신성한 시간이 인간 존재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극단적인 유일신으로 바뀌었을 때, 이미 인간은 신성한 시간으로 잠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위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을 때, 그는 우리 인간에게서 신성한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신이 죽었음을 선언한 것이고, 이제 우리 인간이 신성한 시간을 신으로부터 되찾아올 때가 되었음을 고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의 탄생과 도래란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에 신성한 시간을 풀어 놓은 인간의 탄생과 도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가 죽었다고 선언한 그 신은 죽지 않았다. 다만 변신했을 뿐이다. 죽은 신은 이제 자본으로 되살아나 오히려 일상 속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 세속의 시간을 송두리째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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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말 타기, 나의 좌절된 취미에 대하여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내 책상 위에 액자로 놓여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입었던 살구색 티셔츠와 그때의 당혹감이 되살아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진을 내버려둔다. 나의 그 심리가 무엇인지는 굳이 분석하고 싶지 않다. 이후로 나는 경마장에서 말을 보았다. 일부러 트랙 가까이 갔지만 내가 기대하는 말발굽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몇 년 뒤에는 제주도에서 꽤 신나게 말을 타기도 했다. 그런데 말에서 내린 다음은 기분이 찜찜했다. 현실에서 보는 말은 어딘가 실망스러웠다. 말이 아니라 말의 누더기 같았다. 그와 반대로 내 관념 속의 말은 더욱더 빛이 났다. 대학 시절에 들은 니체의 에피소드가 그 정점이었다. 니체는 뇌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 시내에서 채찍에 맞는 말의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