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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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달면 삼키고 쓰면 글이다] 1화 : 자하문로, 이상과 윤동주.
자하문로 7길 한파가 들이닥친 12월 말, 우리는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만나 서촌 거리를 걸었다. 서촌은 편안한 공간이다. 배고픈 작가들이 한 끼 때울 수 있는 밥집과 그들이 글을 쓸 법한 카페가 도처에 있고, 조금만 빠지면 바로 누군가의 생활공간인 주택과 빌라가 나온다. 거주지에 밀접한 상권이나 규모가 거대하거나 화려하진 않다. 그 소박한 맛에 사람들은 서촌을 찾는 것이리라. 자하문로 7길. 우리는 고즈넉한 오르막길에서 두 시인의 흔적을 줍고자 했다. 이상과 윤동주. 이상의 집을 둘러보고 윤동주가 하숙하던 집 문을 두드린 뒤 윤동주 문학관에 죽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 일정을 짰다. 아쉽게도 월요일인 당시에 윤동주 문학관은 휴무라 동선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이상의 집 샛길로 빠지지 않고 잘 직진하다 보면 이상의 집이 나온다. 그곳은 우리의 예상보다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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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달면 삼키고 쓰면 글이다] 3화 : 독수리 다방, 기형도와 대학 생활
그러면 우습게도, 어서 이 글을 끝내고 새로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독수리 다방에서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대학가 인근의, 죽치고 앉아 글 쓰는 문학도나 과제에 찌들어 있는 학생들이 있는, 흡연 공간이 따로 있는 독수리 다방. 그곳은 내가 등단작을 마무리하던 카페와 몹시 닮아 있었다. 독수리 다방에서라면 편지도 시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떠나보내기 위한 글들을 쓰는 곳과 잘 어울리는 공간을 둘러보면 바깥에는 교회가 있었다. 교회당의 탑을 바라보며 지금도 누군가는 기도를 떠나보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보낸 것이 많다. 그 일들은 주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연인들은 이별의 장소로 카페를 자주 선택하고 내 손을 벗어난 글들은 카페에서 쓰였으며 카페에서 글을 쓰던 사람들은 언젠가 그 공간을 떠난다. 어쩌면 이 세상마저도 떠나버린다. 이 글을 떠나보내고 나면 그 자리에는 또 새로운 글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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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달면 삼키고 쓰면 글이다] 2화 : 엔트러사이트 합정, 윌리엄 블레이크와 파블로 네루다
합정에 위치한 카페였다. 별점도 높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커피 메뉴에 작가들 이름도 있어. 그 말에 호기심이 당겼다. 방문 며칠 전 지인의 SNS에서 “문학 핫플 앤트러사이트 다녀왔다!”는 게시글을 보고 짐작했다. 여기는 그리고 쓰고 배우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겠구나. 카페 입구로 들어서면 어둡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한동안 앉아 있자니 낮은 조도에 눈이 익숙해졌고 카페 전체에 흐르는 가사 없는 음악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밝고 환하며 흰 벽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판이했으나 어두움이 주는 따뜻함에 금세 적응했다. 방문한 시점에는 파블로 네루다와 윌리엄 블레이크, 두 종류의 원두 중 하나를 택할 수 있었다. 네루다는 에티오피아와 과테말라의 원두를 블렌딩한 것으로 산미가 강한 편이다. 블레이크는 스모키한 향이 나며 묵직한 쓴맛이 기분 좋게 입안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