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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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대치동 보디가드
대치동 보디가드 김지유 소주 반병과 안정제 위장에 담고 영재사관학원버스 꽁무니를 따른다 몽당연필 같은 너는 안동 권 씨 추밀공파 태사공 몇 대손, 행(幸)은 능히 기미(幾微)에 밝고 권도(權道)에 통달했다며 성을 하사하신 태조 왕건의 품에 남겨야 했거늘. 밤마다 고사리 손으로 성기를 키우는 왕자여 나의 병기여 물려받은 기둥뿌리 다 뽑아먹고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더구나, 난쟁이 네 아비를 자근자근 밟아서라도 돈이면 장땡인 나라의 노름꾼으로 쑥쑥, 키 대신 목이라도 키워 줄게 이마에 붙인 팔광으로 하늘 밝히고 1번이 일등이 아니라며 너의 성을 노리는 비적들 가랑이를 찢어 놓을게 섯다! 그래 삼팔광땡으로 섯다를 외칠게 저만치 특목고를 위한 판돈은 나의 몫, 나갈게 싸울게 널 뒤따르는 엄마의 그림자가 너무 눈부시더라도 얼굴 찌푸리지 마, 나의 왕자여 나의 병기여 오늘도 무사했구나 피 튀기는 자정까지 섯다를 외치는 내가 대치동 보디가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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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죽음의 현신들-이영광, 『아픈 천국』(창비, 2010)
예컨대, “죽음 무서운 줄 모르는” 한 인간이 필름 끊긴 몸으로 차도에 뛰어들어 ‘질주하는 죽음들’과 대치하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시인은 그 취한 죽음이 지금 ‘복음이 쏟아지는 빛 가운데 서 있는 건’ 아닌지, 저 ‘열렬한 사선에 활로가 있는 건’ 아닌지를 아프게 묻는다(「흔한 일」). 물론 “선지자처럼 자살특공대처럼” 저만이 받은 아픈 천국의 소명에 진저리치며 죽음과 대치 중인 사내의 ‘사선’에서 우리는 섣불리 ‘활로’를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선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그리하여 죽음을 끊임없이 이 곳으로 불러들여 생의 계기로 인식하는 사유의 일단이다. 이 세계를 일컬어 “생사의 혼합림”(「고사목 지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산 나무들과 죽은 나무들이 서로를 깊이 인정해 주면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풍경 말이다. 지워야 할 경계도, 감행해야 할 월경도 없는 이 곳에서는 ‘죽은’ 나무들마저 자신의 생을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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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남겨진 나날들 외 1편
그럼에도 나의 정신은 차가운 기체를 기동하여 적과 대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