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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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조롱의 문이 열리는 순간
산 자와 죽은 자로 두동강 내는 아홉번째 파도에 대하여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젖은 종이들, 부서진 문장들 그들의 표류 앞에 나의 유랑은 덧없고 그들의 환멸 앞에 나의 환영은 부끄럽기만 한 것 ― 「아홉번째 파도」 전문 자신의 내면세계에 머물러있던 시인의 시선은 이제 자신을 둘러싼 객관세계로 그 방향을 옮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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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소설 없는 소설
저 비둘기들은 소비에트의 비둘기들로 1991년에 멸종이 되었으나, 이번에 러시아 국영 기업이 권력을 잡으면서 부활시킨 것입니다. 대체 무슨 헛소리시죠? 나는 물었는데, 블라디미르 근육 대머리는 비둘기들의 자태를 보라면서 나를 유리 벽 앞으로 바짝 떠밀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독수리만 한 비둘기들이 난폭하게 유리 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비둘기들은 미친 듯이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주먹만 한 부리로 유리 벽을 빠직빠직 찍어 댔다. 나는 신경이 빠직빠직 타들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뒷걸음질을 쳤는데 그러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벽에 금이 갔고, 비둘기들이 충혈된 눈알을 부라리며 깨진 유리 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날개가 찢긴 비둘기가 피를 뚝뚝 흘리며 붉고 세모난 입을 벌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꿈에서 깨어나 알람을 껐다. 알람을 끄고 나서도 망막에는 페테르부르크의 환영이 생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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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거위와 인육
처음에 깃털들은 달팽이집처럼 소용돌이를 형성하다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늘여 펼쳐졌다. 이윽고 그것은 꽁무니가 퉁퉁해지고 모가지가 구부러지며 아래로 물갈퀴가 나왔고, 장엄한 크기로 하늘을 부유하는, 그렇게 농장을 굽어 살피는 거위 하느님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악단의 연주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바람을 제어하는 숙달된 기교와 거기 호응하는 깃털들이 구축하는 한없이 가벼운 하느님의 환영이었지만, 동시에 농장의 모든 식구가 환영할 진짜 하느님일 수 있는 위엄과 영광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구덩이 안쪽에서 돋아난 새싹이 거위 하느님을 향해 떡잎 두 장을 맞붙이며 합장했다. 고마워, 하느님! 하느님이 뒤뚱거리며 농장의 하늘을 선회했다. 소인배 천사가 공연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엄지와 중지를 맞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하느님을 영사하기 위해 날개를 푸드덕거리던 거위들이 일순간 바람을 내려놓았다. 하늘을 반주하느라 가빠진 호흡을 추슬렀다. 공중에 떠오른 하느님이 서서히 해산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