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독작(獨酌) 외 1편
저녁 하늘 별 불러 앉히는 영롱한 새소리 쪽을 향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러진 자리를 유심히 보며 권하듯 한 잔 삼키니 돌부처가 거기 있었다 석불역(石佛驛)* 쪽으로 떠나는 밤 기차 소리 들릴 때 길게 삼킨다 꼬부랑길 지나 산 뒤로 숨는 지 몇 달 오래 묵은 도연명을 들춰 보나 그의 문장에는 뵈지 않는 신경질과 모욕감을 창자 속으로 감추며 밤새 헝클어뜨리는 마당 달빛들은 누가 거두는지 새벽은 또 생 옥빛으로만 물들어 오니 혼자 맞기는 아까워라 마당가 풀밭 여기저기 흘린 지린내가 신문지처럼 젖어 있다 * 양평 용문에서 원주 사이에 있는 간이역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영생의 꿈: 길가메시 서사시 외 1편
이것이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 즉 중국인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 낙원의 모습이다. 무릉도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세계처럼 금은보화가 넘쳐나거나 화려한 경관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그곳의 풍경은 평화롭고 한갓지며 사람들은 모두 한가롭고 여유가 있다. 노인과 아이들은 있어도 딱히 계급이나 성별, 연령에 따른 상하 관계가 보이지 않는 평안한 곳이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평화롭고 여유로운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더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다. 선계의 시간에 대한 다른 중국의 설화는 그곳의 시간이 인간 세상의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디게 흐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4세기 무렵 중국 산둥성에 있는 어떤 마을에 사시사철 맑은 물이 솟아 나오고 간혹 참외 잎이 흘러나오는 ‘과혈’이라는 동굴이 있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서재의 역사
백석에게 있어서 “바구지꽃”과 “짝새”와 “프랑시스 쨈” 그리고 “도연명”이 한 군데에 배치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조선어 속의 외부, 프랑스어 속의 외부였기 때문이었다. 과감하게 말해서, 그에게 세계란 ‘한 언어 내부에 있는 외부’ ‘한 국가와 민족 내부에 있는 외부’ ‘문학 내부에 있는 외부’ 들이 펼쳐지는 지평이었다. 백석에게 그러한 내부이면서 동시에 외부인 장소와 언어는 언제나 구체적으로 환기되는 것이었다. 그는 문학과 언어에 있어서 역사성(전승의 문제)과 세계(장소의 문제)를 함께 생각했던 매우 드문 시인이었고, 이러한 문제의 장소로서 문학의 역사성을 가장 첨예하게 만들었던 문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학사는 아직까지도 그를 낱낱이 알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이것은 ‘문학’의 역사성, ‘문학’의 세계성을 모색하고 사유할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고 문학이 문학 내에 갇혀 버리는 역사적 징후처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