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플롯의 해독제, 한유주 소설가
● 고봉준 : 그래서 예를 들면, 그런 문제에 대한 안전장치나 경계 같은 게 전혀 없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좀 다른 이야기지만, 뒤샹에게는 결정적으로 사인이 있었잖아요? 그냥 변기가 아니라 뒤샹이라는 작가의 서명이 기입되어 있는 변기가 진짜인 거잖아요? 또 다른 이야기지만, 아서 단토 같은 사람은 그것이 왜 예술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을 때 모든 것은 예술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이런 경우들은 경계가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죠. 그래서 만일 경계가 없다고 말해버리면 그걸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문제가 생길 것 같네요. 프로필을 보고 독문학을 전공하셨다는 걸 알았는데, 그래서인지 독일권의 영향력이 꽤 느껴졌어요. 미디어에 대한 관심도 그렇고. 문학 자체에 대한, 소설 자체에 대한 고민의 방식들도 한국적이거나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잘 짜여진 플롯을 중시하는 전통과는 달라요. 실제로 소설을 쓰실 때 독문학의 영향을 받으셨나요?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법과 문학, 오만과 편견을 넘어
주리스토크라시(Juristocracy) 문학, 예술 영역의 논쟁이 조기에 법정 분쟁으로 전환되면 예술 사조의 발전이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예술이 나올 기회를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16) 뒤샹(Marcel Duchamp)이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Mona Lisa)를, 피카소(Pablo Picasso)와 달리(Salvador Dali)가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의 <시녀들>(Las Meninas)를 베꼈지만 뒤샹이나 피카소, 달리가 표절했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카소와 달리는 입체파, 추상파, 초현실주의라는 새로운 장(場)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중편연재] 계류와 표류 제3회
뒤샹 작품이 그 가격에 팔린 건 변덕 때문은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다. 학교에 가봐야 소용없어요. 나는 대학도 못 간다는데요, 뭐. 누가? 학교 선생님이요.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대요. 반 애들도 선배들도 모두 그랬어요. 나처럼 기본도 모르는 애가 대회에 나가봐야 웃음거리만 될 뿐이라고. 전국 대회에서 상을 못 타면 특별 전형에 지원할 수 없어요. 난 공부를 못하니까 그런 게 아니면 진학이 불가능해요. 쓸모없는 건 내 시간이나 그림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예요. 그건…… …… …… 할머닌 오리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아요? 글쎄다. 병아리라면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아마 똑같을걸요. 난 오리가 태어나는 걸 수십 번도 더 봤어요. 처음에 오리알은 그냥 뿌옇고 단단해요. 돌멩이처럼 가슬가슬해서 뺨에 문지르면 기분 좋은데, 형은 내가 만진 알은 곪아서 안 된다고 빼버리곤 했어요. 부화기에 넣어 놓으면 알이 푸르스름하게 투명해지기 시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