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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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제10회_책
그렇다면 현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로부터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그는 생성을 가장 깊게 사유했던 생성의 철학자였으니까 말입니다. 나는 사물들을 풀어내고 잘라내야 하는 선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점을 찍는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어리석어 보인다. 선이 두 개의 점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이 여러 선의 교차점에 있는 것이다. - 『대담(Pourparlers)』- 기하학에 익숙한 사람들은 점이 모여야 선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선은 두 개의 점 사이를 잇는 것”이라고 쉽게 믿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들뢰즈는 다르게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선이 교차해서 점이 된다고 말이지요. 점만 그럴까요. 사실 선도 평면이 교차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나아가 평면도 사실 입체와 입체가 교차했을 때에만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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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반쯤 실현된 욕망을 축복하며(제6회)
위 문장은 들뢰즈가 피츠제럴드의 작품 속 인물들이 철학적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논변하면서 쓴 말이다. 즉 “모든 인생은 물론 몰락의 과정이다.”(피츠제럴드, 『균열』, 1936)라는 피츠제럴드의 명제가 어떻게 세속적/피상적 행복의 모든 조건을 부여받은 이들의 삶의 운용 속에서 문학으로 형상화되는지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의 글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는 결코 피츠제럴드의 인물들이 ‘자기 파괴’로 몰락했다고는 결론내리지 않는다. 그런 결론이야말로 성공의 반대말이 곧 실패라고, 행복의 반대말이 곧 불행이고, 쾌락의 반대말이 곧 고통이라고 편리하게 규정지어 버리는 빈곤한 사고다. 들뢰즈가 그 삶의 문학적 형상들에서 추출해 내는 것은 균열을 포옹하는 힘, 균열을 없는 것처럼 봉합하는 안락한 인생이 아니라 균열을 껴안고 그로 인해 부서지고 으깨지며 차갑게 식어버리더라도 깨어나는 몸과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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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매력의 경제학
매력은 필연적으로 이기는 주사위 던지기입니다.1) 흔히 ‘반전 매력’을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들뢰즈에게도 매력의 핵심은 가치의 전환이다. 즉 일반적인 관점에서 결점인 특징도 독특한 조합 속에서는 강점으로 전환된다. 아니 바로 그 약점 때문에 누군가는 매력적으로 된다. 이처럼 놀라운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들뢰즈에게 창조적 글쓰기와 삶의 역량은 동일하다. 매력은 기호를 사유화(私有化)할 수 있는 역량, 혹은 들뢰즈식으로 말해서 ‘가치를 주관화’할 수 있는 역량이다. 그리고 들뢰즈에게 예술은 가치를 주관화하는 역량 그 자체다. 삶의 원천으로서 매력을 글쓰기의 문제와 연결 짓는 것은 아름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확히 들뢰즈적인 의미의 매력이 동시대 문화의 재현 논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인스타그램은 사람을 수많은 기호로 파악하게 하고, 그런 조합을 이끌어낸 독특한 장르로 파악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