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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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레이먼드 카버의 최첨단 기술
(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하지만) 레이먼드 카버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쓰기 전에 이야기의 앞부분만을 담은 「목욕」이라는 단편을 쓴 적이 있다. 같은 이야기지만 두 소설의 세계는 완연히 다르다. 한쪽이 콘크리트의 세계라면, 다른 한쪽은 부푼 빵의 세계다. 한쪽이 벽돌을 쌓아 만든 공간이라면, 한쪽은 이스트로 부풀린 숙성의 공간이다. 두 작품을 발표한 시간의 틈에서 레이먼드 카버는 많은 일을 겪었을 것이다. 나도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을 겪으면 레이먼드 카버가 사용한 것과 같은 입체 가공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최첨단 기술을 질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내가 쓰고 싶었던 작품이자 여전히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이다.《문장 웹진/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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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버의 표지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이 남자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었다. 친구는 쓸데없는 수작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건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남녀의 호르몬을 과소평가한 요구였다. 레이먼드 카버와 보르헤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의 걸작도 그날만큼은 완전히 우리의 관심 밖에 있었다. 나는, 그리고 미영은 오래 전부터 갈구해 온 연인들처럼 서로를 향해 빠져들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미영은 학교 근처의 낡은 재래식 가옥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도 샤워실도 모두 공용인 데다 세탁은 샤워실에서 손빨래를 해야 할 정도로 열악했지만, 미영의 말에 따르면 월세가 워낙 싸서 빈방이 나길 기다리는 학생들이 일 년 내내 대기 중인 집이었다. 미영은 여름방학 동안 부모님이 살고 있는 강릉에서 지내려던 계획을 나 때문에 포기했다. 우리는 매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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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 나오는 제빵사가 될 수도 있을 테고, 페르난두 페소아가 되어 상자에 원고를 모아 둘 수도 있을 거예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다음주는 지유 님이 과제를 낼 차례인 건 저도 아는데,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에 제안 정도는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것이죠? 111주차│329쪽부터 338쪽까지│혜리│2021.08.27. 뒤늦게 올려요. A4용지 한 장을 펼친다. 작가가 책에서 제안한 대로 329쪽부터 338쪽까지를 함께 그려 보기로 한다. 이 페이지에는 사진, 악보, 시, DIY 매뉴얼 같은 것들이 섞여 있다. 이 페이지들을 장소화한다면 어느 장면을 어디에 배치해야 할까. 똑같은 페이지를 읽고 우리가 상상한 공간에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1층 오른쪽 벽에 창문이 있고, 창밖으로 폭설이 내리고 있으며, 창문 아래에 벽난로가 있다는 데에 우리는 의견이 일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