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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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학도호국단장 전지현
학도호국단장 전지현 이경혜 1. "교련 사열에 대해 절대로 불평을 하지 않는 아이가 단 한 명 있었다. 그 애가 바로 우리 성학여고 연대장, 우리의 학도호국단장 전지현이었다. 불평이 무엇인가? 그 아이의 국가관은 웬만한 군인이나 경찰 못지않게 철저했다. 투덜거리던 애들도 지현이가 옆을 지나갈 때면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물 뿐만 아니라 그 순간만은 눈빛을 반짝이며 진정으로 투철한 국가관을 지니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현이의 국가관에 감응을 받아서가 아니라 지현이의 매력에 넋이 나간 탓이었다... ..." “받들어-----총!” 구령대 앞에 선 그 애의 우렁찬 목소리가 운동장으로 울려 퍼진다. 하얀 체육복에 얼룩무늬 교련 가방을 멘 단발머리 여학생들은 일제히 단호한 동작으로 손을 이마에 붙인 채 짧은 음절의 “충성!”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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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후5
지현과 나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창가 아이들이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나는 잠이 오는 척 책상에 엎드렸다. 안 가? 지현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밥 먹고 자. 늦게 가면 맛있는 반찬 없잖아. 창가 아이들은 총 네 명, 지현과 나까지 합쳐 여섯 명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지현의 친구들 틈에 스며들었다. 우리는 두어 명씩 무질서하게 뒤엉켜 식당까지 걸어갔다. 여섯 명이 함께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서 네 명과 두 명으로 찢어져 앉았는데, 지현은 내 옆에 있어 줬다.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나와 여섯은 다시 뭉쳤다. 역시 무질서하게 뒤엉켜서 매점까지 걸어갔다. 매점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골라 교실로 오는 동안 다 먹었다. 각자의 사물함에서 칫솔과 치약을 꺼낸 뒤 우리는 다시 무리지어 화장실로 갔다. 나는 조금 들떴고 평소보다 많이 웃었다. 말 속에 과장된 표현이 절로 섞였다. 5교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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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중편연재] 색깔 없는 얼굴_제3회
한 명에게는 하굣길에 팔짱을 끼고 속삭였고, 다른 한 명에게는 점심시간에 운동장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얘기했다. 너에게만 얘기하는 거야. 비밀 지켜줘. 비밀을 약속했던 둘 중의 하나가 입을 열었다. 둘 다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둘 다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정혜는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어느 날, 어떤 경우든 소문을 낸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문이 옆 학교의 옆 학교까지 번졌을 때까지도 부모님은 아무 말도 없었다. 엄마는 조용히 학교에 다녀왔다. 창피하다고 난리가 난 것은 지현이었고 싸움 끝에 가위가 날아왔다. 부엌 가위가 정혜의 팔뚝을 스쳤고 피부가 찢어졌다. 정우가 가위를 치웠고 정혜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정혜는 가위가 팔뚝을 스치고 바닥으로 떨어지던 순간에 지현과 눈이 마주쳤다. 지현의 눈빛은 뜨거웠다. 지현이 진심으로 정혜가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