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6)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우리 모두의 기다림이 그대들에게 닿기를……
문득 무슨 역인가 전광판을 보니 이촌이었다. 고개를 돌려 전광판 옆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사당을 세 정거장이나 지나 있었다. 머리를 툭툭 치며 내려 반대편 지하철을 탔다. 두 정거장 지났을까. 삼각지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뭔가 다시 집 쪽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전광판 옆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사당에서 다섯 정거장이 멀어져 있었다. 이촌은 사당 세 정거장 전이었던 것이다.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닌데 내 머리는 그런 인식을 할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약속시간에 8분 늦었다. 평소라면 이 8분의 지각이 별로 크게 다가오지 않았겠지만 이 날만큼은 우리 모두에게 크게 다가왔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으로 사당에서 기다리던 일행의 차에 올랐고 그렇게 우리는 진해를 향해 출발했다. 평소에 나는 스마트폰에 빠져 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날은 밤에 잠자고 일어나면 보게 될 뉴스 소식에 희망을 품고 기다리며 폰을 손에 꼭 쥐고 잠들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2045년, 교통사고
작은 수영장만 한 전광판이 어스름한 실내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앞의 넓은 홀에 백여 명의 직원들이 단말기 하나씩을 앞에 놓고 앉아 센터의 운영과 관할 통제소 관리 업무로 분주했다. 전광판에는 서울 내외곽의 주간선도로들이 대동맥처럼 퍼져 있었고 보조간선도로와 집산도로, 국지도로들이 사이사이 모세혈관처럼 얽혀 있었다. ‘정체’를 뜻하는 빨간색 흐름은 차량 분산을 통해, ‘한산’을 뜻하는 파란색 흐름은 차량 유입을 통해, 도로들은 끊임없이 보라색으로 수렴되어 갔다. 허 반장은 센터의 전광판을 볼 때마다 보라색 피가 흐르는 거대한 외계 생명체를 떠올렸다. 전광판 오른편에는 아홉 개로 분할된 보다 작은 전광판에 지방 센터와의 차량 유출입 정보가 표시되었다. 아홉 개의 화면 하단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와 영문 이니셜이 끊임없이 흘러갔다. 전광판 왼편으로는 높이 3m 너비 12m에 달하는 슈퍼컴퓨터 ‘제우스 Ⅱ’가 벽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중편연재]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①
(계속) 작가소개 / 장강명(소설가) 2011년 한겨레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표백』, 『열광금지, 에바로드』, 『호모도미난스』, 『한국이 싫어서』, 연작소설집 『뤼미에르 피플』이 있다.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