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20)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나는 바보가 되네 - 까치발 세우고외1
나는 바보가 되네 전동균 올해 갓 중학교에 입학한 막내아이가 촐랑촐랑 긴 머리를 흔들며 뛰어올 때 그 발밑에서 아이보다 먼저 통통 튀어 오르는 골목길을 볼 때 한 세상 살기 간단찮구나,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먼 산을 바라보는데, 달뜨기 전 하늘이 파아랗게, 새파랗게 고양이 눈을 뜨고 창가에 잠시 내려앉을 때, 그 때, 누가 찾아왔나? 버려둔 화분의 꽃대 하나 갸우뚱 고개를 내밀 때 세상에서 배운 것들을 나는 다 잊어버리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말이 되지 않는 시
산토끼의 바보는 산토끼의 바보니까 연민의 절정 연민의 정수 산토끼의 바보는 산토끼의 바보 산토끼의 바보 산토끼의 바보 - 「산토끼의 바보」 전문 “산토끼의 바보”의 의미는 시집 『햇빛』에 등장하는 시어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매우 난해하게 느껴진다.1) 두 가지 명사의 신선하고 흥미로운 조합이지만 논리적인 의미 관계가 성립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심보선 우리에게 그 어떤 명예가 남았는가 그림자 속의 검은 매듭들 몇 개가 남았는가 기억하는가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주말의 동물원은 문전성시 야광처럼 빛나던 코끼리와 낙타의 더딘 행진과 시간의 빠른 진행 팔 끝에 주먹이라는 결실이 맺히던 뇌성벽력처럼 터지던 잔기침의 시절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곁눈질로 서로의 반쪽을 탐하던 꽃그늘에 연모지정을 절이던 바보,라 부르면 바보,라 화답하던 때 기억하는가 기억한다면 소리 내어 웃어 보시게 입천장에 박힌 황금빛 뿔을 쑥 뽑아 보시게 그것은 오랜 침묵이 만든 두 번째 혀 그러니 잘 아시겠지 그 웃음, 소리는 크지만 냄새는 무척 나쁘다는 걸 우리는 썩은 시간의 아들 딸 들 우리에겐 그 어떤 명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림자 속의 검은 매듭들 죄다 풀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