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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거룩하다기보다는 눈물겨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포박된 수사인 ‘거룩하다’에서 근원적 차원의 인간애를 제시하는 ‘눈물겹다’의 거리야말로 이전 세대와 박경리 선생의 거리였던 바, 까마득한 후배로서 우러르는 선생의 초상 또한, 거룩하다기보다는 눈물겹다는 생각에 잠시 콧잔등이 시큰해졌던 기억이 난다. 작가소개 / 박정애(소설가) 강원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 교수. 장편소설로 『물의 말』, 『덴동어미전』, 『강빈』 등, 장편동화로 『똥 땅 나라에서 온 친구』, 『친구가 필요해』, 『사람 빌려주는 도서관』 등 출간.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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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선생님, 그곳은 어떻습니까?
박경리 선생이 텃밭에서 키운 재료로 직접 조리한 나물을 작가들과 마주치는 걸 피해 새벽이나 늦은 밤 주방에 가져다 놓곤 하셨다. 선생은 산책길에 마주치면 늘 반찬이 먹을 만한지 먼저 물으시곤 했다. 그 정성과 배려가 고마워 나도 무언가 답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걸까. 선생이 통영 분이라는 걸 알고 있던 터에 당시 취미로 즐겼던 게 바다 선상낚시였으니, 그것도 당시 한창 심하게 빠져 있던 레저였으니, 겨울 바다에서 잡아 올린 자연산 우럭을 감상하는 일쯤이야 즐거운 노동이었을 게다. 겨울에는 바다 수온이 내려가 고기들이 깊숙이 내려가 활동성이 현저히 줄어드는 까닭에 웬만해서는 낚시로 우럭 같은 바닥층 어종을 잡아 올리기가 쉽지 않다. 주말에 외출해 먼 바다 침선 낚시까지 감행해서 잡아온 우럭을 먼저 박경리 선생 집에 올려 보내고, 집에서 준비해 준 양념을 넣고 공동 주방에서 우럭매운탕을 끓여 소주 파티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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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달의 노래 -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외1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박강 태초의 사랑을 나는 찾아다녔을 뿐, 한때 당신은 딱딱한 갑주어였고 숲이 우거지면서는 바위틈 엉겅퀴로 피어났어요 쓰다듬으면 베일 듯 가시는 날카로웠죠, 당신은 입술을 갖지 않았어요, 당신 잎맥의 수로만을 그리며 질기게 기다려야 했어요 오랫동안 가시를 숨기면 뭉쳐져 얼굴이 될까…… 속을 찌른 당신이 거울을 보며 울고 있어요, 혓바늘은 당신의 피우지 못한 꽃잎, 개화(開花)의 갈증을 이제 떠올리실 수 있나요 수만 년 전 지류 더듬듯 물을 찾는군요, 당신 입이 꽃술처럼 벌어지고 있어요, 속으로 몰래 묻어 들어가렵니다, 위점막 세포에 단단한 발톱 하나 박기 위하여 생장 증식하여 균총의 마을 일구려던 죄, 당신의 음식만 함께 하고 싶었으나, 당신, 어디 아프신가요, 강산성 토양의 실개천에 핏물이 번져요 나의 사랑을 거부하며 당신은 항생제를 삼킵니다, 위벽을 파고 더 깊이 숨어들어가야 하나요, 아니면 당신 삶을 위해 내가 사라져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