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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선생님, 그곳은 어떻습니까?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선생님, 그곳은 어떻습니까? 조용호 늦게 문단에 나와 당시 단편집은 한 권 묶어냈지만 장편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늘 나를 괴롭혔다. 일간지 기자로 살면서 제대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게 유일한 변명이었다. 단편은 그때만 해도 주말에 회사 앞 여관을 잡아 턱 밑까지 차오른 내압으로 1박 2일 동안 써내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단편과 장편은 다르지 않은가. 열정과 에너지만으로는 단숨에 써낼 수 없는 장르가 장편이다. 단편은 에세이, 장편은 철학에 비유한 글을 본 적 있다. 분명한 자신의 세계관과 인간을 바라보는 튼튼한 안목으로 짜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장편이 나오기 힘들다는 맥락이었을 게다. 하물며 반복적인 밥벌이의 일상 속에서 긴 호흡의 정서가 필요한 장편 쓰기가 용이하겠는가. 애면글면 노심초사하다, 직장생활 18년 만에 처음으로 휴직이란 걸 감행했다. 그것도 겨우 6개월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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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뒷모습과 그늘의 추억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뒷모습과 그늘의 추억 이경혜 박경리 선생에 대한 추억담을 쓰겠다고 덜컥 청탁을 받아들였지만 기실 선생은 나를 개인적으로 아시지도 못했다. 토지문화관에서 선생을 뵙기는 했지만 나는 작품 활동이 저조한 무명작가라 선생께서 기억하지 못하셨고, 나 역시 그런 부끄러움으로 선생 앞에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내게 선생은 직접 뵈었을 때의 기억보다는 먼발치에서 혼자 지켜보던 뒷모습으로 더욱 선명하고, 선생이 베풀어 주신 너른 그늘에 깃들었던 아늑함으로 더욱 친밀하다. 2001년 봄, 나는 우연히 신문에서 토지문화관 기사를 읽었다. 가뭄 끝에 빗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그곳의 이틀이면 뭐든 해낼 것 같아 내게는 벅찼던 숙박료를 지불해 가며(그때는 집필실 지원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오래 팽개쳐 둔 소설을 들고 그곳으로 갔다. 본관 3층 구석방에 나는 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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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거룩하다기보다는 눈물겨운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거룩하다기보다는 눈물겨운 박정애(소설가) 1994년 여름, 나는 첫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어떤 회사에 다녔다. 몸은 쉽사리 피곤해졌고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기왕에도 몇몇 직장을 때려치운 전력이 있던 나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한 누군가를 떠올렸고, 어쩌면 나 또한 그런 종류의 인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학부 전공을 살려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과정을 밟으려 합니다.” 사표를 제출하며 내가 상사에게 한 말인즉슨 그랬다. 하지만 내가 그해 11월 남산만 한 배를 헐렁한 겨울 코트로 가리고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르러 간 곳은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가 아니라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였다. 내가 겪은 가장 더웠던 여름과 가장 반가웠던 가을, 그 몇 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