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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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그가 누웠던 자리
둘째, 특수자의 아픔에 감응하는 일은 그 감응이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주의와 끝내 함께 가는 작업이어야 한다. 타자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임을 아름답게 고백하는 사이비 유마힐(維摩詰)이 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셋째, 고통 없는 세계 혹은 진실한 화해의 세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긍정적인 방식으로(그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시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부정적인 방식으로(그것은 여기에 없다) 환기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자연 혹은 여행지)에서 유유자적하는 저 수많은 시들은 ‘행복에의 약속’이 아니라 행복의 단언이어서 허위적이다. 세 토막으로 이루어진 시 「병원」은 발견, 감응, 환기의 모범적인 사례를 그 순서 그대로 예시한다. 병원과 환자로 은유되는 세계의 실상의 발견, 타자들의 아픔에 감응하면서 이뤄지는 나의 고통의 인식, 미메시스의 윤리와 행복에의 약속을 통해 환기되는 유토피아,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배려가 저 소품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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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하기
이성복의 시는 떡과 술과 과자와 사랑을 만들고, 나아가 피로와 비관주의와 아카데미즘을, 그렇게 몹쓸 시대를 만들고 국법이 되는 ‘밥’에 대한 시이다. ‘밥’은 인간의 정치·사회적인 삶의 근간에 자리한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토대를 상징하며, 내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이 나를 먹는다는 표현을 통해 그러한 밥의 행위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밥은 국법이다 오 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에서는 그러한 물질적인 삶을 돌보고 관리해 온 사람들이 ‘어머님’으로 표상되는 여성들이었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이때 성다영은 같은 제목의 시 「밥에 대하여」에서 이성복의 위 시의 기본적인 소재나 구절을 가지고 오되 시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뒤집어 놓는다. 성다영의 시에서는 밥을 하는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라 남편에 해당하며, 남편들이 해왔던 말을 아내의 발화(“남편이 새벽 다섯 시에도 아침밥 차려줘요/결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로 뒤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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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소설의 원점, 혹은 클래식-퓨처리즘
그리고 종이접기와 접붙임의 결과물로 도출하고 싶었던 것은 전망-없음과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의도적인 평범성의 추구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보여주는 핵심은 미래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다. 이 소설은 동반 자살을 꿈꾸던 준이와 지민이 외삼촌의 독특한 시간적 인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구성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이 유행하던 세기말 감수성 아래, 미래-없음과 전망의 부재를 경험했던 기억이 다시금 평범한 일상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오늘날에도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의 미래-없음과 전망 구성의 불가능성이 일상화된 묵시록의 형태로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묵시록적인 현재에 대한 거부가 오히려 미래를 기억하는 태도를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아이러니가 이 소설집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간다. 이 소설집에서 미래는 전망이 아니라 기억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