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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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기꾼 외 1편
사기꾼 이성미 사기꾼이 집으로 찾아와서 나를 데리고 갔다. 사기꾼 집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사기꾼에게 기꺼이 시를 주고 모욕을 당했다. 사람들은 시를 주면서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시를 이렇게 필요로 한 사람은 없었어. 사기꾼에게 시를 주려는 사람이 계속 찾아왔다. 그런데 왜 이 집에서는 사랑이 사라질까. 이상한 일은 이상하게 내버려두었다. 현명한 사람들이 가장 빨리 떠났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도 떠났다. 모든 사랑을 준 사람은 수명이 끝났다. 떠날 곳이 없는 사람들은 끝까지 남아 시를 바쳤다. 나도 떠났지만 집을 끌고 왔더니 집 속에 사기꾼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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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구름 - 사기꾼 외 1편
구름 이성미 구름이 낀 날인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인지 분간이 안 된다. 어떤 날은 구름이 자동차보다 느리게, 사람만큼 천천히 대도시에서 우리 동네로 온다. 이런 날은 정약용이 제주도에서 서울 아들의 반찬을 걱정하며 다정해지는 마음을 알게 된다. 태풍이 오는 날은 비행기보다 구름이 빨리 온다. 아주 느린 구름과 아주 빠른 구름을 나는 시에 적어 넣는다. 적란운이라는 단어가 미야자와 겐지의 시에 있을 때와 일기예보에서 들었을 때와 과학책에서 보았을 때는 다르다. 나도 그렇다. 이 점이 중요하다. 시에 있는 나를 나라고 믿으면 안 된다 여러분. 아주 느린 구름과 아주 빠른 구름은 참 드물다. 그렇지 않은 구름은 흔하고, 쉽게 배경이 된다. 흔한 내가 시에 있는 나보다 더 많다. 내가 보고서에 있는지 공원에 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매일매일 흔한 내가 구름처럼 나타나고 사라지고. 그것은 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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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명작에서 괴작까지 13] 진짜에서 가짜까지
우리 안의 어리석음을 희화화하는 즐거운 사기극들은 언제나 사랑받아왔다. 가장 원형적인 이야기들에서부터 『베니스의 상인』을 거쳐, 2천 년대에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탐욕스러운 자가 속아 넘어간다는 결말은 언제나 같지만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스타일이 점점 좋아진다. 현실 세계에서는 사기꾼들을 증오하면서도 영화 속의 사기꾼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어째서일까. 최근에 개봉한 <아메리칸 허슬>, <나우 유 씨 미>, <갬빗> 모두 아슬아슬하고 즐거운 영화들이었는데 각자 매력이 다르므로 비교해봐도 좋겠다. 그런데 만약 거짓말을 하는 상대가 애인이나, 사기꾼이 아니라 개인이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집단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를테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면 말이다. <브이 포 벤데타>의 정부가 그런 정부인데, 3차 대전과 치명적 전염병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들어선, 언론을 완전히 통제하는 독재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