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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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사람 뜯어보는 재미로 사는 작가
그것은 아마 산촌 오지 마을에서 태어난 내가 극장을 드나들며 넓은 세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후부터 혹은 도시에서 전학 온 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를 알고 난 후부터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내 생각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는 대체 왜 생겨날까. 사랑의 감정은 어떻게 발생되는 것이며 웨이브 머리를 한 멋진 여성을 보면 몸이 혼곤하게 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등에 머물렀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이미지가 궁금했다. 여성의 몸이 궁금했고, 뽀얗던 솜털이 거뭇하게 변해 가는 것도 신기했다. 나이가 들어 도시에 살 때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주변을 스치며 지나치는 여인의 옷에서 풍겨지던 향수가 어디에서 만들어졌고, 그것을 뿌렸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또 어떠한지도 궁금했다. 궁금한 것이 많아지면서 생각도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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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낫의 시간」외 1편
증조할아버지가 지었는지, 가진 것에 비해 작고 소박한 집에 살고 있던 손도순이 산촌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 지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지었는지 영영 알 길이 없어졌다. 그러나 마음은 편했다. 고향집의 시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곳에서 시작된 나의 뿌리를 돌아보고, 그 집을 지은 사람들과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백 년의 집을 위로하는 소박한 의식이고 의례였다. 이제 누가 집을 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쓸고 닦고 아끼며 그 집을 소중히 여겼던 이들이 있었다. 자연에 스며있던 집과 그 집에 스며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한 세기를 보냈다. 쓰러질 것 같은 집도 사람이 살면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했다. 집을 마지막까지 버티게 하는 건 숨, 사람의 숨. 나는 문서들의 사본과 알아낸 사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애와 삶을 정리해서 백여 쪽에 달하는 서면을 법원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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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대기맨
시간이 흘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가난한 산촌이 개발되면서 조망을 중시하는 부자들이 저택을 지었고, 그즈음에 사장할머니는 이미 이 집을 팔지 않아도 될 만큼 배짱이 생겼다는 소문과 풍수지리가 좋다는 말도 있었다. 엄마는 동네의 수많은 가십도 전했다. 학교에서 보는 아이들의 불편한 가정사도 있었다. 지영은 그런 소문을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게 잘 안될 때 지영은 고개를 돌려 주변의 저택이나 정원 같은 곳을 둘러봤다. (나중에 지영은 옆의 두 저택 중 한 곳에 사는 애와 친해져 그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애는 지영네 집이 작은 정자처럼 보인다고 말했는데, 사실이었다. 더 나중에 지영 방에 놀러온 그 애가 지영의 방이 예상보다 크다고 말했다) 어찌 됐든 옥상은 아버지가 망루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히 높았다. 풍경을 그리기에도. 아버지는 가끔 공책이나 스케치북에 뭔가를 그렸다. 지영이 볼라치면 아버지는 슬그머니 스케치북을 덮었다. 이후로 지영도 못 본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