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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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극장 의자 外 1편
극장 의자 박서영 나는 순정한 눈빛을 가진 짐승을 만나러 간다 영화가 끝난 뒤 맨 뒷자리에 구겨져 앉아 있을 때 음악은 초조하게 스크린 밖으로 흘러나가고 불은 성급하게 켜졌고 청소부는 너무 빨리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 의자가 짐승처럼 나를 안아 줄 때 외로움은 잔혹하구나, 연인들이 하나 둘 극장을 빠져나간 뒤 맨 뒷자리 누군가에게 손목 잡힌 채 문득 생각한다 외로움은 극장 의자에서 시작되어 극장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극장 의자를 떠나는 것이라고 텅 빈 극장 의자들은 맹수가 아니라 착한 짐승이구나 어두컴컴한 방에서 무리지어 참 착하게 순하게 살고 있구나 이곳이 내 실존의 장소처럼 불안하고 평화롭다 뭉쳐진 먼지덩어리들 자막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청소부는 너무 빨리 상황을 정리한다 이곳이 내 이야기의 시작이면서 끝일지도 모르는데 스크린의 문장들이 도마뱀처럼 뛰어 달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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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를 배워 등단하고 삶을 배워 시를 쓴 문학주의자
시를 배워 등단하고 삶을 배워 시를 쓴 문학주의자 대담 신경림(시인) 진행?정리 안상학(시인) intro 소회 학창시절 등단시절 시대정신 새로움 낙향 상경, 첫 시집 시인이란 모름지기 모든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시낭송-갈대 근황 문학주의자 젊은 시인들에게 문학하는 사람으로서의 사회적 실천 독자들에게 안상학 안녕하십니까, 안상학입니다. 오늘은 시인 신경림 선생님을 뵙고 선생님의 데뷔 시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저 자신도 1988년에 등단했는데 신경림 시인이 심사를 하셨습니다. 심사평을 지면으로 보면서 많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 말씀은 아직도 제가 시를 쓰는데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신경림 시인께서는 1955년~1956년에 걸쳐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하셨습니다. 추천을 하신 분이 이한직 시인이신데 시천기(詩薦記)에서 이런 저런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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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상황의 발견
“근데, 상황이라는 말 되게 좋아하시네요.” 소녀가 남자의 눈앞에 휴대전화를 들이대며 다시 입을 연다. “그럼 제가 상황을 정리해 볼까요? 지금 상황은 전적으로 업주의 과실인 상황이라고요. 저로서는 보름 전에 예약했고 어제 예약 확인 문자까지 받은 상황인데 말이죠.” 의도적으로 상황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남자는 할 말을 떠올릴 수 없다. 모든 게 소녀의 말대로다. 어떻게 환갑이 넘은 노인네가 자동 문자 전송 서비스에 가입할 생각을 했을까. 생각할수록 열 받네. 소녀가 후드를 벗으며 뇌까린다. 둥글고 흰 이마가 밑으로 드러난 외꺼풀의 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도전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내려놓았던 볼펜을 다시 쥔다. 드디어 드러난 소녀의 긴 눈매와 앙다문 입매에서 고집스러움이 엿보인다. 평소라면 남자도 지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남자의 일상으로부터 먼 곳이다. 볼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소녀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