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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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인유(引喩)에 대하여
그러나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에게조차 인생은 한낱 아침이슬 방울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러한 인생이 의지할 곳이 없음을 개탄하는 이 시의 기본 정조는 인생무상이라 하겠다.12) 여기서 ‘성희’는 글자 그대로 ‘별이 드물다, 별이 성기다’의 뜻이다. 필자는 ?향수?에서 ‘석근(혹은 성근) 별’이 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그다지 무리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또 ‘까마귀와 까치’를 의미하는 ‘오작’과 「향수」에서의 ‘서리 까마귀’ 역시 인유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문에 조예가 깊었던 정지용이 이 유명한 시문들(「단가행」과 「적벽부」)을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월명성희 오작남비’라는 구절 속에 담긴 정치적?역사적 함의는 제거된 채, 「향수」에서는 정서적?서경적 측면에서의 인유로 남겨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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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달의 마중
달의 마중 서경희 앙상하고 긴 손가락을 가진 여자가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인 딸기우유 두 개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까뜨린느?” 여자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드니 쇼트커트를 한 여자가 배시시 웃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사고 싶다고 연락해온 사막여우였다. 지금껏 작가 얼굴을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단편 시나리오는 주로 학생들이 과제로 제출하려고 샀기 때문에 구매자들은 얼굴은커녕 실명을 밝히기도 꺼렸다. 사막여우는 달랐다. 작년에 사들인 시나리오로 찍은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나리오 팔 거죠?” 사막여우가 계산대에 바싹 달라붙었다. 나는 입을 꾹 닫고 느긋한 척했다. 눈을 내리깔고 사막여우의 손을 훔쳐봤다. 네일아트를 화려하게 한 손톱은 미러볼 조명을 받은 것처럼 반짝거렸고, 가운뎃손가락엔 팥알만 한 진주반지를 끼고 있었다. 나는 흉측하게 변해버린 내 오른손을 슬그머니 계산대 아래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