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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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얼굴을 비울 때까지
정상적인 모녀 관계와는 다른 어떤 관계의 패턴이 서영과 서영의 엄마 사이에는 형성되어 있었다. 기억상실증과 엄마의 많은 애인은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우리가 함께 보낸 2년 동안 서영이 엄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한 것은 그때 단 한 번뿐이었다. 그녀가 제주도로 내려가기 전에 한두 번 만났지만 서영은 마치 지난 시간이 닳아 없어져 버린 것처럼 다른 이야기만 했다. 우리가 그나마 공유하고 있는 단체전 얘기보다는 지루한 그 뒷이야기들. 〈계단〉이라는 제목의 서영의 참가작은 구상과 추상을 대담하게 결합한 것으로, 우리의 단체전에서 단연 돋보이는 꽃이었다. 전시장을 방문했던 은사들도 서영에 대한 각별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내 기억이 옳다면 그 작품으로 서영은 신인화가에게 주는, 상금이 결코 가볍지 않은 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상은 몇 년 운영되다 없어졌는데 그것도 서영의 그림 포기만큼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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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임시보호자
편의점 앞 간이테이블에 나와 서영이 마주 앉았다. 맥주 두 캔에 취한 서영이 평소에 하지 않은 이야기를 간증하듯 꺼냈다. 저도 오빠 얼굴이 기억 안 나요. 서영과 남편은 교회에서 만났다. 남편은 고등부 교사였고, 서영은 홀로 교회에 간 열아홉 살 새 신자였다. 기도와 찬양이 어색한 서영이 교회와 공동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남편이 도왔다. 서영의 일과를 묻고, 학교생활과 가족관계를 궁금해했다. 서영의 기분을 살피고 감정을 보살폈다. 이제껏 서영은 질문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모조차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느라 딸아이의 하루와 학교생활을 묻지 않았다. 하물며 기분과 감정을 묻고 보살피는 삶이란 사치 중의 사치였다. 딸의 안녕은 키가 크고 여드름이 늘며, 학년이 바뀌는 것으로 확인했다. 그것을 성장의 지표이자 결과라 믿으며 안도했다. 서영이 학교생활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동급생으로부터 어떤 고통을 받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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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삶이 지니는 신비한 역동성의 탐색
서영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신영철 근래에도 작품을 쓰고 있습니까? 서영은 예, 금년에 장편을 출간할 계획이에요. 제 욕심은 5월말까지 끝냈으면 하지만, 모르겠어요. 서영은 장편을 쓰고 계신 게 중편으로 발표되었던 작품인가요? 서영은 《작가세계》에서 제 특집을 마련한다고 해서 장편으로 구상했던 부분을 300매로 압축해서 발표한 거죠. 이 장편을 완성하면 일단 작품을 통해서도 제 삶의 화두 한 부분이 완전히 마무리된다고 생각해요. 신영철 저도 그 작품을 읽었습니다. 늘 선생님을 영광스럽게도 하지만 때로는 곤혹스럽게도 만드는 김동리 선생님에 대한 선생님의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