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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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부메랑
부메랑 서영처 그해 가을 나는 결백했다 그러나 가끔 손거울을 들여다보면 멀리 날아갈 꿈을 꾸는 새 내 안의 새 제 눈을 찌르고야 둥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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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천문학자
천문학자 서영처 바흐의 음악들은 별빛, 수백 년을 거쳐 내게 도달한다 느린 악장을 천천히 켜며 나는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 총총한 별자리를 더듬는다 선율과 화성으로 가득 찬 별들의 길과 간격 나는 둥근 하늘을 가늠하고 측량한다 활 끝에 묻히는 별빛에 귀를 곤두세운다 페가수스, 카시오페아, 북두칠성, 오리온 宇宙絃을 건드리자 푸가, 자유롭게 쫓아다닌다 내 별은 멀찍이 서서 그를 향해 반짝일까 말까 반짝일까 말까 반짝인다 무한한 창공인 바이올린의 지판 위에서 다가갈 수 없는 거리를 더듬어내던 음정…… 나는 다시 별들의 길을 추적한다 별빛들을 끌고 와 활 끝에 휘감아서 펼쳐낸다 부드러운 소리들을 비밀한 바구니에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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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한여름밤의 꿈
한여름밤의 꿈 서영처 강 건너 맹그로브 숲에는 사나운 어미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내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는 젖을 못 뗀 새끼호랑이가 쿨쿨 잠들어 있는데 이 녀석이 수컷일까, 암컷일까, 아무튼 오늘은 내 결혼식날 나는 한껏 부풀린 드레스로 갈아입고 화관을 쓰고 하객들에게 둘러싸여 식장으로 들어섰다 정장을 한 당나귀 신랑이 털북숭이 손을 내밀었다 하객들의 박수 소리, 폭죽 소리, 남이야 쑥덕거리든 말든 누런 달이 떴는데 이상하다, 떡갈나무 아래 어른거리던 그림자 보이지 않네 떠들썩하던 웃음꽃 시들어 가는데 흥겨운 음악도 멈췄는데 자꾸만 근질거리며 발굽이 돋아나고 줄 끊어진 바이올린 금간 틈으로 맹그로브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난 칭얼대는 새끼호랑이를 안고 젖을 먹인다 그래그래 착하지, 라디오에선 강을 훌쩍 건너 뛴 호랑이가 마을을 습격했다는 소식, 숲을 내달리며 집채만 한 슬픔으로 포효하는 저 얼룩무늬, 아직 선물상자들을 열지도 못했는데 어쩌나 아가야― 울울창창해지는 이 숲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