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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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서울역 지하도의 비둘기 집 - 3층 호프집에서 달콤한 농담 외1
서울역 지하도의 비둘기 집 이대의 집을 짓고 있다. 한때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살았을 집. 눈보라 피해 보금자리 틀다가 어느 순간 내몰린 비둘기들. 해 저물면 노숙자들은 한나절 동안 지은 허공의 집을 버리고 서울역 지하도로 몰려든다. 종이 박스로 바람막이하고 냉기 막기 위해 구겨진 신문 깔고 눅눅한 이불로 첩첩이 쌓아 만든 비둘기 집. 독한 슬픔의 냄새가 찬 바닥을 흐른다. 붉은 설움이 얼어버린 집. 날이 밝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집. 어둔 밤을 지내기 위해 지어진 집들, 비둘기들이 웅크리고 있다. 날개 접은 사람들이 얼어붙은 채 집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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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단검 - 詩人 外
단검 우대식 8월의 염천, 서울역 광장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자던 한 할머니가 문득 일어나 앉았다 담배를 길게 빨더니 여기서 가장 가까운 시장이 어디냐 묻는다 남대문 방향을 가르키며 남대문 시장이라 말했더니 가장 큰 시장은 어디냐 물었다 아침 햇살이 얼굴에 쏟아져 몹시 더웠다 남대문 시장이 가장 크다고 일러주었다 어디서 왔냐고 내가 물었다 수원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순간 수원시가 아니라 수원부와 같은 조선 후기 지명으로 받아들였다 무엇을 사려고 그러냐 물었더니 무엇을 팔려고 한다고 하였다 신문지에 둘둘 싸고 다시 보자기에 싼 뭉치가 하나 옆에 놓여 있었다 뭔데요 몰라도 된다고 대답할 때는 마치 함흥 사투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동대문 벼룩시장 같은 난전에 물건을 펼치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럴 물건이 아니라고 화를 냈다 뭐냐고 다시 물으니 할머니는 일어서며 말했다 칼이다 이눔아 서울역에서 지하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대문을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잠자던 한 자루의 단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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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詩人 外
내가 물었다 수원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순간 수원시가 아니라 수원부와 같은 조선 후기 지명으로 받아들였다 무엇을 사려고 그러냐 물었더니 무엇을 팔려고 한다고 하였다 신문지에 둘둘 싸고 다시 보자기에 싼 뭉치가 하나 옆에 놓여 있었다 뭔데요 몰라도 된다고 대답할 때는 마치 함흥 사투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동대문 벼룩시장 같은 난전에 물건을 펼치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럴 물건이 아니라고 화를 냈다 뭐냐고 다시 물으니 할머니는 일어서며 말했다 칼이다 이눔아 서울역에서 지하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대문을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잠자던 한 자루의 단검이 꼿꼿하게 한성역 광장을 건너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