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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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그녀에게 시간이 있는가?: <화차>
그렇다면 <화차>의 두 여성에게 시간이 있는가? 진짜 박선영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억을 포함해 몇 안 되는 주변인들에 대한 기억을 가지며 어느 정도 자기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타인들에게 그녀는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일 뿐이다. 진짜 차경선에게는 시간이 있는가? 그녀는 자신의 지긋지긋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지워 버리고, 박선영의 기억과 신분을 도용해 다른 정체성,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녀는 박선영인가, 차경선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보증해 주는 차경선의 기억이 지워진 자로서, 그녀는 단지 현재를 살 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기억이라는 자기 정체성, 자기 동일성을 통해 체험적 시간의 문제를 다룬 베르그손의 철학을 통해 화차의 주인공 차경선의 시간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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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문학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으로서의 창구가 되어주길
[새 문장에 바란다] 문학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으로서의 창구가 되어주길 성경선 (배우, 문학공연 연출가) 화창한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가을을 지나 차갑디 차가운 겨울이 다가왔다. 이렇듯 사계절 안고 사는 우리들은 많은 감성과 풍부한 감각들을 지니고 살고 있다. 요즘은 모든 것이 급변하고 다양한 것들이 우리를 자극한다. 여기서 문학은 우리들로부터 어디쯤 있을까? 발 한 치쯤 뒤에? 아님 그림자 한 치쯤 뒤? 아님 저 고개 넘어 한 치쯤 뒤일까? 내가 처음 문장을 만난 것은 문학 집배원 문장 녹음을 위해 배우로써 녹음하러 갔을 때였다. 그 후 문장배달을 신청해서 참으로 재미나게 듣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매주 다른 색깔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만 만나오던 문장. 그러던 어느 날, 문장에서 내게 ‘문장에게 바라는 것’이라는 물음을 물어왔다. 무엇을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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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슬픔의 아나키스트, 그리고 ‘이후의 시(詩)’
그렇다면 “언어를 가지지 못한 존재의 발화 불가능성에 자리를 내주는 고도로 자기성찰적인 언어, 무의미가 됨으로써 오히려 충만한 증언을 가능하게 하는 공백의 언어, 증언의 불가능성을 지시함으로써 역으로 증언에 성공하는 역설의 언어”, 다시 말해 “작가에게 증인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그런 언어는 어떻게 가능할까.19) 다시 김형중이다. 그는 “시란 뮤즈가 관할하는 일이지만, 만약 어떤 사건이 진정 트라우마라는 말의 엄밀한 의미에 합당한 성질의 것이라면 거기에 뮤즈는 찾아들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뮤즈의 도움 없이 발화된 고통의 언어는 비명이거나 증상일 뿐”이라고 덧붙인다.20)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날 이후 많은 것을 잃었다. 작게는 단어부터 크게는 문법까지. 우리는 세월호 이전의 언어와 이후의 언어가 같을 수 없음을, 같아서는 안 됨을 안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재현이 불가능한 슬픔 앞에서 비유와 상징은 무능하고 무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