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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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조롱의 문이 열리는 순간
인간에게 있어서 생을 지속하는 데 가장 근본적 행위인 호흡의 불능은 그 인간의 생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며, 호흡의 불능이 초래하는 고통은 “숨만 제대로 쉴 수 있다면 죽어도 좋아요.”라는 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화자에게 있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초월하는 고통임을 유추할 수 있다. 고통으로부터의 탈피를 간절히 원하는 화자에게 “희미하게 밝아오는 창문들”은 더 이상 “철망 사이로 스며드는 빛”(「조롱의 문제」)처럼 절망을 견디게 해주는 대상이 아닌 화자에게 주어진 형벌의 시간을 늘리는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화자는 “이제, 그만, 그만, 문을 닫고 싶어요.”라며 자신이 지닌 생명력의 완전한 상실과 동시에 “저 검은 바다”로 표상되는 신이 부재한 공간과의 작별을 희망한다. 3. 파도를 물고 오는 파도 이처럼 시인의 시 세계는 절대자의 부재로 인한 스스로의 죽음 충동의 발현과 피조물의 숙명인 소멸과 조락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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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적’이 없는 시대의 문학 정치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진은영은 랑시에르적 사유에 기대었으나, 실제 분석에서는 “김수영의 문학적 사유는 불화 또는 불일치의 정치학이 표명하는 미학적 정치성을 구현하고 있다.”5)고 결론 내 랑시에르의 입론을 비껴갔다. 랑시에르는 이렇듯 텍스트에 표명된 언표나 글쓰기 자체에서 정치성을 구하지 않는다. 문학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 속에 개입하는 어떤 방식”6)으로 규정해, 문학 정치는 ‘말 자체의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개입하는 방식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적’이 없는 시대에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세계에 개입하는 문학’을 통한 정치성7)의 구현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문학을 통해 세계에 개입해 온 대표적인 작가를 찾다 보면 김숨이나 박상영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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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작가, 금기에 도전하다
「분지」의 서술자 홍만수는 홍길동의 10대 손과 단군의 후손을 자처하는 인물로 미 펜타곤 당국에 의해 제거되어야 할 테러리스트로 몰린 채 향미산에 갇혀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홍만수가 홍길동의 10대 손이자 단군의 후손으로 설정된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에게 홍길동은 의적의 전형, 단군은 민족의 기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기에 홍길동의 10대 손과 단군의 후손을 자처하는 홍만수 역시 의적의 후예이며 동시에 민족의 후예라는 자격을 자연스럽게 획득하고 있다. 작가가 왜 이러한 설정을 하게 된 걸까? 이유는 명백하다. 홍만수를 미국에 저항하는 의인이자 동시에 미국의 억압을 받는 민족의 표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는 홍만수를 홍길동의 10대 손이자 단군의 후손으로 설정하고 있다. 문제는 의인이자 민족의 표상인 서술자 홍만수가 이제 곧 처형될 수난자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