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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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감정수업
감정수업 공화순 “언어는 어떤 언어나 고요한 자리에 놓고 위하기만 하는 미술품이 아니다”라고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글이 생각난다. 그동안 너무 오래 잊고 살아온 이 말은 문득, 내 언어의 표현에 의문을 가져다준다. 늘 속에 가두고 밖으로 끌어내지 못한 숱한 내 감정의 말들이 밖에서 소비되는 대신 안에서 곪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애의 병원에 동행하여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통증의 정도를 10단계로 나눠 표정과 함께 구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통증이 어느 정도인가요? 아주 조금, 이 만큼?” 조절 레버를 움직이며 의사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환자에게 묻는다. 과연 통증의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통증의 단계를 몇 단계로 말할 수 있다면 내 감정의 단계도 말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뒤미처 들었다. 그동안 나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많이 감추며 살아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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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경제수업 外
이중기 경제수업 저건 미친 짓이다 사내 하나 마구마구 식은땀 흘리며 봉두난발의 눈발 속으로 투망을 던진다 뭘 하느냐고 물으니 물고기를 잡는 중이란다 백결 선생 호주머니로 투망질하는 허허, 저 봉이 같은 놈! 허생 같은 놈! 그러나 봐라 저 사내 투망에서 퍼덕이는 물고기 백결 선생 꾀죄죄한 구리동전을 저 사내 염화미소 아래 사바세계 대자로 눕는다 그믐에 기대어 나를 멀리했던 사람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마침내 은자가 된 사람의 사치가 따뜻하다 갈치 등 같은 벼랑 일구었으나 거두지는 않았던 그 사람 세상을 갋아 어처구니로 탑을 쌓은 곳 오래 묵은 산의 고요가 마을을 지키는 먼 기억 우레 소리 듣는 죽장면 두마 간다 개다리소반에 이승밥 한그릇 동무하지 못하고 봉인된 슬픔을 뜯어 새를 날린다 기별도 없이 지는 별 하나를 거둔다 나는 마음이 멀어 몸이 멀어 마침내 그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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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말하기수업
─ 단편동화 말하기 수업 김혜진 “어머, 두 분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원래 두 사람이 수업을 진행합니다.” 나이든 쪽 선생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두 선생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숫자 10 같아서, 젊은 선생님이 홀쭉하게 마른 1이고 배가 넉넉하게 나온 나이든 선생님이 동그란 0이라고 하면 딱 맞았다. 동그란 선생님이 말하는 동안 홀쭉한 선생님은 연신 안경을 고쳐 썼다. 홍이가 보기에도 긴장한 티가 났다. “꼭 교생 선생님 같아. 이쪽 할아버지 선생님은 저 선생님이 수업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러 왔나 봐.” 홍이는 짝인 유나에게 속삭였다. 유나는 소리죽여 킥킥 웃었다. “자, 여러분, 여기 보세요!” 담임선생님이 손뼉을 짝짝 쳤다. “오늘부터 두 달간, 목요일 5교시마다 말하기 수업을 해주실 선생님들이세요. 이쪽이 송 선생님이시고 그 옆에 박 선생님. 나도 가끔 와서 볼 테니까 말씀 잘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