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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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빗속에서
빗속에서 김은경 집으로 향하는 성내천(城內川) 길 우산 없이 비를 맞는다 토끼풀과 나란히 비바람에 시시때때 꽃잎과 결별 중인 찔레나무와 나란히 눈 뜨고 잠든 돌멩이와 나란히 나란히 돌아보니 빗속을 이렇게 맨몸으로 걸은 기억이 없다 어느 저녁 피치 못할 소낙비를 맞으며 눈물로 한 사내를 기다린 적 있었으나 불손하게도 인생은 어차피 장마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 때 있었으나 빗방울을 생애 단벌로 껴입은 토란잎처럼은 아니었다 황사 비에도 어김없이 제 초록을 키워 가는 청미래 이파리처럼은 아니었다 (슬픔의 연주 방식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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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자리돔 구이야 삼도에서도 시시때때 안 먹고 지나가면 서운한 것이죠. 화덕에 굵은 소금 뿌린 자리돔이 놓였는데 너무 잘 아는 게 탈인 경우가 왕왕 있잖습니까. 노인회 부회장이 말했습니다. “근디 어째 이상하다. 이것 비늘 안 벗긴 것 같네.” 그러자, 그때까지 건성으로 보다말다 하고 있는 이들도 각자 젓가락 들고 건드려 보았죠. “오메, 진짜네.” “이것도 그러네이. 이것도 그러고.” 부회장은 종업원을 불렀죠. “이봐, 아가씨. 이 재리(자리돔을 삼도에서 부르는 말)가 좀 이상하구만. 비늘이 그대로 있어.” 바쁜 와중에 불려나온 종업원은 그래서 어쨌냐는 얼굴을 했습니다. “예, 비늘 안 벗겼어요.” “아 글쎄, 비늘이 안 벗겨졌다고.” “맞아요. 안 벗겼어요.” “나 말이 그 말이여. 왜 안 벗겼냐고.” “원래 안 벗겨요.” “허참. 그래서 어떻게 묵어?” “익으면요, 이렇게 껍질을 한꺼번에 벗겨내고 드시면 돼요.” “껍질은 또 왜 벗겨?” “껍질을 벗겨야 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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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5월_별_소설] 빙글빙글 돌고
지인들은 늘 그렇듯, 시시때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외국어를 많이 해야 취직할 수 있다는 말씀.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씀. 난 어르신들의 말씀대로,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라이베리아와 부르키나파소에서 쓰는 말들을 배웠다. 사실, 그 외에 별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술을 배울 수도 있었겠지만, 몸을 쓰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또 다른 정부의 프로그램에 덕분에 시장에 취직까지 할 수 있었다. 취직한 곳은 24시간 음식을 파는 가게였다. 사람들은 이를 편의상 편의식당이라고 불렀다. 난 주로 야간에 일을 했고, 아주 가끔씩 라이베리아 사람이나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노동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스카리니아 말을 곧잘 했기 때문에 내가 외국어를 쓸 일은 거의 없었다. 외국어란 취직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취직한 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편의식당의 일은 외국어뿐만 아니라, 다른 기술도 특별히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