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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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편지 - 비문증
편지 - 비문증 신혜정 눈, 코, 입을 지우고 얼굴을 떠올립니다 막대기를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 주변을 없애는 모래놀이 바다를 하얗게 떠 놓은 달 국자 한가운데가 텅 비었습니다 빈 곳을 그리기 위해 가장자리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일테면 사건의 지평선 배경을 그리면 부재가 완성되는 복숭아가 있던 정물 달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일 시간을 하얗게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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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편지 - 에필로그
편지 - 에필로그 신혜정 서쪽으로만 뜨는 해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져서 서쪽으로만 뜨는 당신의 반대 방향으로만 눕고 반대 방향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이 지고 뜬눈으로 당신이 떠오르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이드미러의 붉은 신호등처럼 지나치는 의미 없는 시그널들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그림자가 해 쪽으로 조금 기울었고 나는 눈이 조금 멀었습니다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도는 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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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국의 연인
이국의 연인 신혜정 갈치구이를 숟가락으로 파헤치던 네게 나는 젓가락으로 살을 발라 주었지 살과 뼈가 섞이는 접경에서 너를 만났지 You make my day! 매일 메일을 통해 날아오는 너의 소식은 경쾌한 리듬의 스윙 한 통의 프렌치 키스 고흐와 렘브란트 생가 사이의 어디쯤 그림처럼 너의 집이 놓여 있고 너와 찍은 사진 속 붉은 일몰이 푸른 눈 속에서 그리움처럼 출렁이겠지 다시 만난 너는 젓가락질을 능숙하게 잘 했지 뼈와 살의 접경을 넘나드는 아슬한 곡예 콩알을 하나하나 들어 올려 연습했던 너는 나의 이국의 연인 팔뚝의 황금빛 털들을 가만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 지도와 사전을 점자처럼 짚어 가며 얘기를 하면 어릴 적 꿈같은 웃음꽃이 활짝 피고 너는 어느새 나의 새 언어처럼 부드럽게 혀끝에 닿아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