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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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윤을 기다림
세수도 안 하냐고 놀리는 그녀에게 윤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산책은 십 분 만에 끝났다. 동네를 빙 돌아 걸어가니 제법 넓은 냇가가 나왔다. 그 주변으로 가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둑길을 걷던 윤이 가건물 중 한 곳으로 쑥 들어갔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서야 그곳이 식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건물 앞에 안주류가 한없이 나열된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윤은 일어난 지 한 시간 십 분 만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윤은 만취했고 그녀의 한쪽 어깨를 빌려서야 간신히 걸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윤은 코를 골며 잤고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이튿날 윤이 깨어난 시각은 오후 한 시 무렵이었다. 좁은 집 안에 술 냄새가 진동했다. 윤이 자는 동안 그녀는 빨래를 하고 큰방을 제외한 집 안을 청소했다. 잠에서 깬 윤은 침대에 기대앉아 한 시간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런 다음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음식을 배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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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기획취재-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것 1
윤은 문학경기장 안에 축구장과 야구장만 있는 줄 알았지 눈썰매장과 공연장과 박태환수영장이 있다는 사실 또한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윤은 그토록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다.) 스무 평 남짓한 화각교육장 안에 길게 뻗은 책상을 바라보자 이재만은 기다렸다는 듯 설명했다. 아이들과 부모가 와서 화각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책상이라고. 아이들이 화각판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색칠해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책상 위엔 도료 자국이 얼룩덜룩 남아 있었다. — 그러니까 요즘 애들이 향초 만들기나 쿠키 만들기 체험을 하는 것처럼요? — 직접 보고, 만들어 보고, 느껴 봐야지. 실생활에서 전통문화를 접해 보지 못한다면 그걸 어떻게 전수하고 보존해 낼 수 있겠어. 가까이 있어야 돼, 뭐든지. 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하는 동안 이재만은 물을 마시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접힌 다리를 펴서 두드리지도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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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기획취재-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것 2
[기획취재] 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것 (2)― 화각장 이재만 안보윤 ― 죽음을 세 번쯤 경험한 사람. 이라고 이재만은 답했다. 윤은 순간적으로 내뱉은 질문을 후회했다. 도대체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것은 무례한 질문이었다. 겸연쩍게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는 윤에게 이재만이 자신의 양손을 내보였다. 몇 개 남지 않은 손가락 끝이 생강빵처럼 부푼 손이었다. ― 내가 어릴 때 호기심이 얼마나 많았는지, 화롯불에 양손을 쑥 집어넣어 버렸더란 말이야. 그길로 손가락이 불에 죄 녹아버렸어. 화상만도 난리인데 마침 홍역을 앓는 바람에 다들 이 애는 죽겠구나 했다더라고. ― 아. 윤은 달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재만의 손은 첫 만남 때, 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 발을 들이던 순간부터 눈에 띄었다. 불에 녹았다는 말이 정말이지 어울리는 손이었다. 윤은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수시로 이재만의 손을 훔쳐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