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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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독자모임-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2
시인은 세상과 다툴 때 그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안웅선 시인은 이런 의미에서 ‘연약한 투사’ 같아요. 김영삼 : 색에 대해 덧붙이고 싶어요. 안웅선의 시에서는 때론 그 아름다운 빛깔들이 구원이 사라진 세상을 속이는 가짜 구원의 변장술로 쓰이는 것 같아요. 「사생대회 불참의 변」이라는 시를 보면 ‘나’는 “묘사에 필요한 물감은 주머니에 넣고 꿰매버렸는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는 잠, 바다, 산맥, 평야, 강 등 이런 것들을 포기하는 존재예요. 다른 시들과 함께 보면 이 ‘나’라는 존재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위치에 있어 보입니다. 사생대회에 불참하고 있으니까 저는 어린 신처럼 보이는데, 그러니까 그가 어린 신이든 조물주든, 그냥 어린아이이든 세상을 거짓으로 물들이기를 거부하는 거죠. 그가 색색의 물감으로 가짜 구원의 포장을 포기하는 거예요. “내가 모두 숨겨버렸는걸”이라는 표현도 그렇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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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드라마 - 페르가몬의 양피지 외 1편
드라마 안웅선 * 잠깐, 눈 그치면 창들은 모두 햇살로 쏟아져 모든 일기를 훔쳐보았다 * 개새끼, 그래 너는 맨날 너만 생각하지 고요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자 엄마 엄마, 나 안 가 못 가 내가 다시 걔 얼굴을 어떻게 봐 * 정지된 화면, 뻔한 신파, 재벌, 불륜, 살인, 강간, 좀비까지 지긋지긋하고 넌덜머리가 나면서도 * 장롱 속 낡은 이불 위엔 앓는 꽃들로 언 발 하나, 밀어 넣을 자리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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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발신(發信)
발신(發信) 안웅선 당신, 이 세기로 감춰진 사람 문득 담쟁이로 가득한 나라의 왕족 같다 이 세기는 새벽 깊은 해저로 가느다란 시차가 연결되는 공중전화 뒷모습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일에 익숙해집니다 활주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일로 중독을 이해하기로 해 허공에 대해 오해하듯 자백한다 다시 말하면 구토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출발하는 사도들이여, 난 딱 어제만큼 큰단다 여러 날 느리게 항해한단다 공정하게 말해진단다 하지만 다정하진 않아요 당신, 흔적이 아닌 적 있었던가 웃거나 화내지 않음으로 야만의 박동이 된다 간신히 무채색을 꿈꿀 수 있다 덧칠을 덜어낸 화가의 자리 웃자란 가지들이 시야를 벗겨내고 있어요 입술이 붙었다가 간신히 떨어지는 순간을 새벽의 공중전화 숨어 울기 좋은 크기로 일어나세요 나도 사람입니다 여름이란 참 눈에게 많은 무늬를 주는군요 이제 길거리에 팔리는 이야기들이 늘어 가지만 당신, 그것은 발신될 뿐 영원히 수신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