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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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감각적 이미지스트의 시정신
강경희 : 정형률의 시, 리듬의 어조에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종길 : 운율, 리듬을 타야 합니다. 시상, 상념이 가락을 타야 합니다. 모더니스트들은 무시를 하지만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리듬이 됩니다. 강경희 : 지적인 긴장과 도사림으로 시를 썼다고 하셨는데요. 김종길 : 적게 썼고 단순해 보이지만 상당히 끙끙거렸습니다. 「황사현상」도 오한, 봄 가뭄, 황사, 일련의 처음부터 유사한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강경희 : 시 창작뿐 아니라 문학이론에 관한 집필도 많이 하셨지요. 김종길 : 가르치는 처지니까 했고, 젊을 때부터 시 자체도 그렇고 시 이론도 재미있었어요. 대구사범학교 다닐 때 ‘폴 발레리’에 가장 심취했어요. 난해했고 발레리의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섬광 같은 것을 느꼈고, 현란한 산문도 난해한 것도 있지만, 잘 모르는 채로 심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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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한 소녀가 울고 있네
그녀가 세상에 대고 내뱉었다는 ‘말’은 이러했다. “저는 예술가입니다.” #5.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대는 문화예술의 시대이다. 아침에 일어나 문화를 먹고 문화를 입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의 문화와 예술은 기본적으로 ‘일상의 가치’를 추구한다. 모더니스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감히 범접하지 못할 전문가의 영역인 무대 안의 문화예술 활동이 무대 밖으로, 보다 확대된 현대 일상의 영역으로 전개되고 있다. 나는 우리가 하는 것이 문화인지, 혹은 문화가 아닌지 잘 모른다.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아직도 우리는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힘 있는 자들의 논리에 따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은 바로 잡힐 것이고 나쁜 것은 좋게 될 것이며 추한 것은 아름답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문화와 예술이 역사를 통틀어서 주력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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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회전목마 안으로 걸어가다
그러고 보니 새들이 한 곳으로 날아가며 휘저어 놓은 구름 사이로 길이 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구름이 만들어내는 길을 따라 걷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허청허청 걷는다. 후르르. 분명 새 울음 소리다. 멈춰선다. 발길을 관리 사무소 쪽으로 돌린다. 천막 안 공기가 후끈하다. 그는 두꺼운 스티로폼 위에 앉아 있다. 가발과 삐에로 옷을 입은 채였다. 그는 내가 온 것을 모르는 것처럼 쳐다보지도 않는다. 피리를 불면서 테니스 공으로 저글링 연습을 하고 있다. 버클이 풀린 스틸트를 치우고 나는 그 옆에 앉는다. “줘 봐. 나도 한번 불어 보게.” 그가 입 안에서 작은 피리를 꺼낸다. 이거? 피리를 옷에 쓱쓱 문질러서 내게 준다. 입 안에 넣고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쉬쉬. 피리 사이로 바람만 빠져나간다. 왜 이렇게 어려워. 이것도 요령이 있는 거야? 그는 피리를 가져간다. 이렇게 혀로 입구를 반쯤 막아. 그는 혀를 길게 뺀 뒤 그 끝에 피리를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