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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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마당의 풀을 뽑다 외 1편
마당의 풀을 뽑다 이상국 1908년 옥천에서 태어난 김기림은 도호쿠 대학을 나와 시인이 되었다 바다를 청보리밭으로 알았다거나 무슨 산맥들이 아라비아 옷을 입었다든지 하는 구라파풍의 시를 남기고 북으로 붙들려 갔다 같은 해 양양에서 태어난 나의 아버지는 시골 유생으로 필사본 만세력과 주역을 가지고 담배벌이를 하거나 비오는 날 공회당에서 자아비판을 했고 세필 끄트머리에 침을 발라 가며 나에게 축문 쓰는 법을 가르쳤다 김기림은 북조선에서 인민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수복지구에서 촌부로 생을 마치는 동안 자빠지고 엎어지고 그 사이가 백 년이 넘었다 시인은 넘쳐나고 노래는 많아도 아버지가 부르던 학도가를 나는 지금도 부른다 사회진보 깃대 앞에 개량된 자 임무가 중하다지만 봄은 짧고 나라는 힘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민은 죽어나고 그렇게 개고생한 아버지들은 가고 아무것도 아닌 아들만 남았다 북에 있는 김기림의 아들은 뭘 하며 사는지 며칠째 미세먼지가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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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입춘대길 外
박기동 입춘대길 봄내*에서 한 십 년 살다보면 물에서 나는 냄새를 거부할 수가 없다 안개는 안개인데, 손잡을 데 마땅치 않은, 가령 가는 명주실이라든가 살얼음판에 나선 바람이라든가 더 이상 앞으로 가기 어려운 이곳은 안개밀집지역이라 해야 하나 지워지지 않는 위수지역이라고 해야 하나 내 생에 이런 계엄령 따위가 해제될 수 있을까 영 넘어 양양에서 사는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는 어린 시절을 완강하게 붙들어 놓은 시인에게 전화라도 한통 해야겠다 봄내에서 한 이십 년 살다보면 물에서 올라오는 삼월이 소식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얼음 깨고 올라오는 복수초는 제주도나 대관령으로부터가 아니라 몇 년 시 못 쓰고 살아온 나 같은 불령시인에게도 안으로부터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삼월이 소식을 들어야 한다 *봄내(春川) 강가의 나무 나는 그냥 서 있다. 주소지를 떠나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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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파도를 나무라 부르고 숲에서 물고기 한 마리 구하네 - 아버버지이이 외 1편
파도를 나무라 부르고 숲에서 물고기 한 마리 구하네 김임선 나는 지금 바다에 빠져드는 깊이 고기 잡는 어부가 되어 두꺼운 장화 신고 물보라 되어 등 푸른 작업복을 갖춰 입고 내 주머니에는 낡은 수갑이 나는 물고기 한 마리 신께 바칠 높이 물의 비명을 견딜 귀마개는 내 목에 걸려 있어 나는 바다야 오래 전부터 너의 발소리를 예감했지 눈을 감지 않고도 느낄 수 있어 바다에 바람이 일지 않는 날 어디 있었니 너를 상상했어 오래 널 기다리며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네 너는 무자비할 것이며 너는 음흉할 것이며 너는 어리석을 것이며 나는 바다를 빠트리는 그물이야 너의 허리춤에 매달려 의기양양한 수평선을 정복하는 거야 내 운명은 그물 잣는 노인의 결심이었거든 오래 벼린 나는 파도 한 그루야 나는 파도 파도 한 그루야 나는 수많은 파도 한 그루야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 보겠어 뛰어 보겠어 미쳐 날뛰어 보겠어 나는 해변을 기웃대는 먹구름이야 뿌리는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