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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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리뷰] 월간 〈읽는 극장〉 6회 – 기억전쟁
내가 나를 가해자의 자리에 둔다는 것은, 가해자로서 져야 할 책임까지 당연히 생각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연극 <별들의 전쟁>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지나간 역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에게 연결지어, 문제를 지금 여기로 가져오고자 했습니다. “유죄/무죄는 누구나 쉽게 내릴 수 있고 형량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게 제 3자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로 다가올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 국가 자격을 상실하게 되면 그 국가의 국민인 나로 연결이 되잖아요. ‘잠깐만, 내 나라가 없어진다고? 내가 왜?’ 여기까지를 접근시켜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김수정) 배심원 자격으로 연극에 참여해 피고 대한민국의 유무죄를 결정한 관객들은 연극의 결론에만 참여하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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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
대학을 졸업하는 데 어학 시험 성적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우습게 여겨졌다가 나중에는 화가 났다. 내가 왜? 나는 외국에 나가 살 것도 아니고 그런 성적이 필요한 곳에 취직할 생각도 없는데 대체 왜? 그러니 '오퍼'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그게 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묻지도 않고 승낙한 건 아무래도 토익 때문이었다. 토익 시험을 치르고 나왔을 때 고등학교 동창이 전화를 걸어와서 자기 학교 선배가 이번에 극단을 하나 만들어서 공연을 올리는 데 오퍼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극장이 너희 학교랑 가까워. 그리고 너, 학교에서 연극도 해봤잖아?" 친구는 연극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투로 말했고, 그 말을 듣자 비록 학내 소모임이지만 연극을 해봤다는 사실이 자랑으로 여겨졌다. 그래, 나는 연극을 해봤지. 배우로 몇 차례 무대에 올랐고 어설프지만 대본도 써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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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연속 공개 인터뷰 나는 왜 제3회 최민석 자선소설] 괜찮아,니 털쯤은
어쩌면 나는 상영되는 영화에 상관없이, 극장과 그 극장에서 머무는 시간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날도 그저 시간이 나는 대로 극장에 들렀다. 영화관에서는 늘 그랬듯이 무슨 무슨 기획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간과된 국제영화제 수상작들’ 같은 느낌의 기획전이었다. 그날 본 영화는 <내 책상 위의 천사(An Angel at My Table)>였다. 심각한 수준의 빨간 곱슬머리에다 뚱뚱하기까지 해서 폐쇄적인 성격이 돼버린 소녀는 오로지 문학에만 탐닉하게 된다. 그 속에서 해방을 맛보지만, 소녀의 선생은 소녀의 폐쇄적인 면을 이상하게 여겨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소녀는 8년 동안 200회의 전기충격 요법으로 치료를 받으며 더욱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간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최초의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하지만 소녀는 이미 오랜 정신병동 생활을 통해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