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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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왜 여성이었는가
생명줄을 쥔 채 이들의 안위를 위협할 권리는 누가 갖는가. 이들이 무엇을 잘못한 걸까. 예쁘고 착하기만 한 여자(경아)의 실체는 미성숙하고 경제력이 없는 '아이'일 뿐이거나 신비로운 부재감을 내뿜는 이상화된 '성처녀'로 미화되고, 경제 자본이 있는 여자(『민주어족』의 김은애)는 소비에만 몰두하는 퇴폐향락의 아이콘이 된다. 왜 이토록 여성에게 가혹한가. 『별들의 고향』은 더욱 문제적이다. 경아는 '문오'라는 '70년대적' 청춘의, 허무와의 '화해'를 돕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 모두가 외롭고 우울한 청춘인데 왜 경아만 '살해'당하는가. 경아는 (고작) 그의 내적 자아의 '성장'을 위한 파트너였다가 섹슈얼리티가 소거되자 생명조차 간단히 소거되고 만다. 미대생이었던 문오는 경아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림을 폭발적으로 생산하지만, 경아는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다. 김지영이 지금 여기의 젠더 불평등을 고발한다면, '언니들'은 비극 속에 조용히 삭제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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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이웃들
나는 정면을 보면서 줄을 꽉 쥔 채 줄넘기를 했고 송은 금방 들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도로 나왔다. 트레이닝으로 갈아입고 줄넘기를 들고서. 그를 보자마자 나는 줄에 발이 걸렸다. “옆에서 같이해도 돼요?” 그게 송이 나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순간 당황했으나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두어 걸음 물러섰다. “너무 가까우면 안 돼요.” 송은 성인 남자가 팔을 벌린 너비 정도의 거리에 섰다. 줄넘기를 하는 두 사람 사이에 적절한 거리였다. 줄넘기의 손잡이에는 SONG이라는 글자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는데 원래 그런 제품인지 그가 붙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와 나는 몇 분 동안 말없이 줄넘기를 했다. 줄이 허공을 가르고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번갈아 울렸다. 삼십 분을 채우고 줄을 손에 감자 송도 멈춰 서서 물었다. “매일 하세요?” “거의요.” “몇 시에요?” “왜요?” “저도 늘 줄넘기를 하고 싶었는데 못 하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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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서로의 손을 쥔 두 사람의 가슴팍은 느리게 오르내렸다. 에바 초이는 작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아까 그 누나예요. 기억나요? 네. 왜요? 아이는 에바 초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신의 손과 가위, 종이에만 집중했다. 매뉴얼을 참고할 수 없는 상황, 에바 초이로서는 전에 없던 친절함을 발휘할 때였다. 정말 미안하지만, 종이 자르고 노는 건 비행기에 있는 동안만 멈춰 주면 좋겠어요. 가위는 검사대에서 길이 다 쟀는데요. 종이는 안 버리고 챙겨서 내릴게요. 요즘 아이들은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무섭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에바 초이는 돌발 상황에 맞설 때 친절함보다 자제력이 더 필요함을 잊지 않았다. 아이가 자르는 것은 세계지도였다. 해안선을 따라 바다와 육지를 가르고 있었다. 바다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는 비행기 기체의 소음에 비하면 아주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