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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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부정과 부정의 비속어들이 내 근육의 전부다 일그러진 얼굴을 마스크 속에 감추고 각본에 따라 반칙을 일삼는다 손가락으로 눈알을 찌른다 철제 의자를 등뒤에 꽂는다 나의 악행이 극렬해질수록 관객들은 호불호를 판별할 수 없는 환호성을 뱉는다 시원하게 세상에 나온 가래가 되어 점액질의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누가 악역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결국 나는 헐크로 변한 호건의 밑구멍에 깔려 카운터를 맞이할 뿐이다 헷갈리는 사이에 원 투 쓰리, 그는 손목을 뱅뱅 돌리며 자신의 귀에 환호를 담고 있다 순간, 내 안에서 모든 약물이 춤을 춘다 곧 사인이 없는 돌발적 상황이 생길 것이다 ― 「마스크 1」 중 마스크 X는 처음부터 지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는 존재다. 악행을 일삼다 헐크 호건에 의해 제압당하는 룰은 기성의 규율이며, 세계의 확고부동한 법칙이다. 마스크 X의 소임은 마치 세계 내에서 실패자를 담당하는 소시민의 역할과 상동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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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부엉이에게 울음을 (제1회)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 회색빛과 오렌지 빛, 초록빛으로 번쩍이는 석회 기둥 위에 가만히 서 있던 남편이, 갑자기 모종의 행위인 양 두 팔을 벌려 하늘로 치켜든다. 아 나는, 저 광경을 어디서 본 듯하여 문득 심장이 불안하고도 격렬하게 뛴다. 그리고 남편은 기둥에서 내려와 물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남편의 벗은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이십 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동안 한 번도 그의 뒷모습을 이렇게 관찰하듯 바라볼 기회가 없었다. 탄력 없이 일그러진 사각형의 몸통은 왼편으로 비스듬히 기울었으며 다리는 쭈글쭈글하고 앙상한 데다 양쪽의 길이가 달라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호수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알칼리 수치와 염도가 아지랑이를 일으켜 형체를 일그러뜨리는 것이라고 나는 짐작해 버린다. 남편은 서서히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수영을 하려고 한다. 5월의 한낮이지만 물은 아직 찰 것이다. 나는 창밖으로 손을 흔든다. 남편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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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극락조의 노래
결코 짧지 않은 연주가 마무리될 때까지 광장 안의 그 누구도 시선을 옮길 수 없었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달아날 수 없었다. 이윽고, 처녀는 연주를 마치고 대공 앞에 바로 섰다. 대공은 분노로 입술을 떨었다. “네가 감히…….” 그녀는 옥좌 위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 미소가 대공을 더욱 격분시켰다. 흙피리의 주인은 자신에게 생명의 절반을 부여한 아비의 일그러진 눈을 올곧게 맞받았다. “왕국의 신민들이 음유시인에게 부여한 의무에 따라 죽은 넋을 위로하려 했습니다.” 대공은 더 참지 못하고 왕홀을 집어던졌다. 아슬아슬하게 딸의 이마를 비껴간 왕홀은 바닥을 구르며 조악한 비명을 질렀다. “음악은 금지되었다! 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그녀는 흙피리를 고쳐 쥐었다. “저는 음유시인입니다.” 그녀가 그리 되고자 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아버지의 병든 마음을 고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기에. 병들고, 서럽고, 배고픈 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침묵을 손에 넣고자 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