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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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5월 월평] 어떻게 교감하고 소통하고 계십니까
[5월 월평] 어떻게 교감하고 소통하고 계십니까 김미정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를 지극히 합리적이라 믿으며 문화의 축적과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지만, 실제로 그것은 대단히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해서 인간의 언어생활은 원초적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오해의 연속일 뿐이며, 거기서 비롯된 언어의 횡포가 인간들을 핍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 E. 이오네스코, 「의자들」 여러분은 판토마임을 보신 일이 있나요. 대사 없이 몸짓만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무언극(無言劇)이라고도 하지요. 무대장치가 없거나 최소화된 상태에서 배우는 표정과 몸짓만으로 무언가를 표현해 냅니다.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이루어지는 극이지만, 우리는 배우가 표현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 무용은 어떤가요. 판토마임보다 조금은 모방성이 덜하지만(‘마임’은 ‘mimic’에서 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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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3월 월평] 욕심 없는 글
욕심 없는 글 김미정(문학평론가) 글에 대한 욕심이 클수록 멋진 표현, 언어들을 구사하고 싶은 욕구도 커질 것입니다. 글 쓰는 많은 이들의 공통된 욕구이자 조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전봇대 사진사」는 그런 욕심을 절제하고 최대한 자기만의 생각과 언어를 소박하고 꾸밈없는 문장 속에 녹인 것이 장점입니다. 사실 ‘전봇대’라는 사물에 ‘사진사’라는 인격을 부여한 것 자체는 사실 큰 기교는 아닙니다. 그런데, 평소에 내 입장(혹은 인간의 입장에서) 지나치는 일상들이 특정 사물의 시점에서 재구성될 때의 세계는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전봇대’라는 사물만의 시점뿐 아니라, 글쓴이인 ‘나’와 일정 정도 교감을 나누는 사물이라는 점이 글 속에서 표현되어 있어서, 기계적인 의인화로 읽히지 않은 점도 좋았습니다. 또한 글에서 표현하는 ‘사진사’가 단지 세계를 포착하고 묘사하는 역할이 아니라, 어떤 시간적인 흐름과 그 변화들을 기억하고 반추케 하는 기록자, 저장소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나이대건 사람에게는 추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고, 변화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겠지요. 또한 이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것이 있는 반면, 동시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존재합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한 사실이지만, 이런 당연하고 사소한 것을 일상 속에서 깨닫기란 쉽지 않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보여주는 주제(에 해당할 내용)도 울림을 주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소 요설적인 부분이 눈에 띕니다. 작은 에피소드들이 생생한 느낌과 구체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전체 구성상 좀 더 압축적으로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장난감에 예술을 더하다」는 간결하고 정돈된 세련된 문장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짧은 글이지만 전체의 구도 속에서 각각의 요소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각 단락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잘 훈련된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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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월평] 작용과 반작용, 세상과 글쓰기
작용과 반작용, 세상과 글쓰기 김미정 “아이가 멀리 더 멀리 밀어내는 공, 그 호를 그리며 날아가는 공을. 정지된 내 생명을 먼 데로 밀어내는 것 같은 힘. 공이 지면에 쿵, 부딪칠 때마다 내 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 깊고 과묵한 시간과 어둠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 내가 사는 곳은 암흑도 사차원의 상태도 아니다. 이곳은 저 쇠공이 밀어내는 강한 힘으로 허공을 꿰뚫고 지나가는 세계다. 나는 보지 않고서도 쇠공을 던지고 줍고 다시 던지는 아이를 본다. 그 공이 날아가는 궤적도. 그것은 마치 내 힘의 크기 같아 보인다. 내가 보는 것이 현재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또 무순에게 말한다. 네가 정말 위대한 투포환 선수가 되고 싶다면 너는 지금의 그 원처럼, 그 보호된 고독 속에서 네 삶을 살아야 할 거라고.” (조경란, 「학습의 生」, 『일요일의 철학』, 창비, 2013) 최근 저는 조경란 작가의 「학습의 生」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은 시골의 한 소년과, 그곳에 새로 이사 온 한 여자 사이의 우정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투포환 선수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자는 선생님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소년은 아마도 부모의 매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자는 회복 불가능한 면역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소년도 여자도 고립되고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소년은 여자를 통해 투포환 선수를 꿈꾼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여자는 소년을 통해 잊고 있던 삶에 대한 의지를 떠올립니다. 우정이란 공감을 바탕으로 싹틉니다. 공감은 나와 너의 ‘공통적인’ 무엇이 접속하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정, 관계란 것이 늘 그러하듯, 거기에는 사소한 오해와 어긋남이 개입하기도 합니다. 소년과 여자의 우정도 그런 과정을 겪습니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 그 오해와 어긋남은 사소한 것입니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바깥으로부터의 중력에 맞설, 자기 안의 의지, 반작용의 힘을 깨닫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