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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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세탁소 外
세탁소 사무실 생기 슬리퍼 『천둥을 쪼개고 씨앗을 심다』은 1991년 《현대시학》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문숙 시인의 첫 시집이다. 등단작 「천마표 시멘트」를 비롯한 6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휘황한 현실의 풍경 뒤에 버려진 누추한 사물들의 환생을 그려내며, 덧없고 비루한 삶의 조건을 넘어선 생명의 약동을 보여준다. 먼지 쌓인 환풍기, 비닐 철사 옷걸이, 더러운 하천가의 나무들, 철거당한 집터 등 무심한 시선이 쉽게 지나칠 만한 사물들을 시적 대상으로 삼았다. 시인이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물들에게서 집요하게 읽어내는 것은 그것들에 투영된 우리의 고통이다. 시인은 사물과 그것에 비친 자신을 응시하는 과정을 통해 고통과 교감하고, 그것을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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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블루 라이트 외 1편
블루 라이트 이문숙 족저근막염을 앓는 친구에게 구름을 신겨 주었다 그랬더니 어느새 구름의 승강장에 올라 손을 흔든다 야간 등을 달고 비행기가 벌써 넉 대째 구름 속으로 잠긴다 미얀마에 가 탁발을 하거나 먼지 냄새 나는 마을에서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물론 아픈 제 발을 주무르며 제발과 제 발의 차이를 가르치긴 무척이나 어렵겠지 띄어쓰기가 이렇게 중요한 건 처음 알았어 장미의 이름이 춤추는 소녀이거나 블루 라이트이거나 하늘에 그녀가 벗어놓은 샌들이 한가득이다 끈이 끊어졌거나 뒷꿈치가 형편없이 닳았거나 바닥에 잔돌이 박혔거나 나는 가끔 내가 그녀에게 선사했던 최초의 신발을 찾아보러 장미 정원에 간다 장미의 이름이 붉은 행성이거나 아이스 버그이거나 샌들을 샌달로 잘못 읽기는 너무 쉬워 그녀의 신발을 탁탁 털어주며 달에서 모래가 흘러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고 하지는 마 장미의 이름이 베테랑이거나 썸머 드림이거나 달에서 모래가 흘러내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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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흰눈새매올빼미 - 블루 라이트 외 1편
흰눈새매올빼미 이문숙 버스를 타고 버스를 또 갈아타고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만년설산이 먼 이름만은 아니다 나는 묻고 싶어진다 이토록 헤매다니는 너는 전생이 무엇이였냐고 흰눈새이다가 새매이다가 올빼미이다가 결국 흰눈새매올빼미로 통합되는 이름 어느 춥고 척박하고 모진 북반부의 국가에서는 황홀이라는 말을 대체하여 여름의 해질녘이라고 쓴다 계속되는 혹한과 폭설의 밤 삶이라는 나쁜 표면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나도 나를 대체할 이름이 필요하다 흰눈새의 흰눈새매의 흰눈새매올빼미의 조금씩 확장되는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슬픔도 여름날의 해질녘이네 놓쳐버린 광역버스도 해질녘이네 빵집 뚜레주르, 서비스 데이에 나오는 모카빵도 덤으로 주는 아이스티도 순도 100퍼센트 생과일만 행복한 건 아냐 홀짝거리며 빨대로 긁는 복숭아 향 첨가물 그 지독한 오늘도 빵집 눈치를 살피며 냉온박스에 담겨 있는 청년이 파는 주먹밥 창고 속에서 썩어가는 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