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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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이별의 능력 외 3편
김행숙 이별의 능력 해변의 얼굴 다정함의 세계 코러스 이별의 능력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 있는데 내장이 연통이 되는데 피가 끓고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든 안개를 거느리고 이민을 떠나는데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새들이 큰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물고 갔어.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알게 돼.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건 구름. 당신의 지팡이.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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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내 책과의 이별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내 책과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전에 논문을 검색하다가 대학교 한참 후배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유와 문장력이 뛰어났다. 수소문하여 직접 통화했다. 그렇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바로 학문을 연구하고 글 쓰는 후배들한테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주고 싶다. 만약 한국수필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내 책을 주는 기쁨은 배가 될 것 같다. 지인이 인터넷 중고 서점에 내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내 책을 넘기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최후 방법은 손수레로 폐지를 수집하는 동네 노인에게 작은 횡재를 안겨주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과 정신과 감정으로 얽힌 내 책들, 곧 이들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15년 전에는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불태우겠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불태우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이별하는 길이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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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별 - 그림자의 집 외1
이별 안성호 가로등 밑, 옷걸이에 걸린 노란 우의처럼 고개 숙인 그녀 벤치를 지나는 누군가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몸에 딱 맞게 단추를 채우고 가버렸다 흩어지는 발자국마다 이내 비가 몰려든다 하굣길 여중생들이 주전부리하듯 빗물이 길 위로 몰려다니고 고인 빗물 속에 가로등 불빛은 파문을 일으키며 구겨졌다 펴졌다 나는 오랫동안 먹다 남은 두부처럼 천천히 상해 갔다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그 사이로 구불구불 비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