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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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말이 말이 되려는 찰나-이제니, 『아마도 아프리카』(창비, 2010)
-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부분 절절한 이별시의 하나로 기억될 만한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에서도 ‘나’는 등 돌린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너’를 향해 “안녕 잘 가요”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는 말들일 뿐. 그래 봤자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별의 순간에조차 “우리의 안녕은 이토록 다르거든요”라며 불행한 불일치를 확인한 것보다도, “다정한 척을 세 번도 넘게” 하며 이별을 기정사실화하는 장면이 더 슬프다. 마주 볼 용기도 없어 등 돌리고 흐느끼는 ‘너’를 향해 다정한 척을 하며 잔인한 이별을 고해야 하는 ‘나’의 심사는 어떤 것인가. 아마도 “우연처럼 만날 것”(「편지광 유우」)을 알기에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말하지 못한 말들을 삼키거나 뜻 없는 문장들의 뜻 없는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일뿐”(「공원의 두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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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님의 침묵』과 화엄사상
이별이란 주제어를 끌어내어 작품화하고 있는 이 두 번째 시는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별시를 총괄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이별에서 진정한 미가 탄생되는 이치는 번뇌에서 참다운 보리[菩提, 깨달음]가 터져 나오는 이치와 동일하다. 선의 세계에서 볼 때, 현상계의 이별이나 번뇌 역시 텅 빈 공성(空性)의 한 작용일 뿐임을 알기에 비록 무명 속에 있다 해도 ‘참나’[법신불]의 한 나툼으로 이해된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그대로의 현상을 보여준 것이 된다. 그러나 ‘번뇌즉보리’를 단순히 선의 세계에 대한 이해로만 접근하게 되면 삶의 역동적인 현상을 담아내기가 어려워진다. 번뇌가 보리로 승화되는 과정은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선’의 개념보다는 현상계의 중생을 품으면서 교화해나가는 보살도(菩薩道)의 ‘화엄정신’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는 시집 『님의 침묵』의 ‘님’을 ‘정상성 회복의 한 표상’으로 보는 필자의 취지와도 잘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