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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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숨겨진 보물 같은 책이야기]반어와 풍자에 비친 역사적 책임의식
이서빈(시인)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글틴 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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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달의 이동경로
달의 이동경로 이서빈 첫 이마를 숙인 밤하늘에 생채기 난 달 하나가 떠 있다. 고원의 순례자들은 출발할 때 이마에 달 하나를 챙겨간다 그 밝기로 험로를 오체투지로 간다. 이마가 땅에 닿을 때마다 신들은 따끔따끔 거릴 것 같다. 이마가 헐고 조금씩 상처가 나 오래된 표시로 딱지가 앉는다. 거뭇한 이마에 굳은살로 뜬 붉은 달. 티베트 여행길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가는 순례자를 만났다. 몇 달 며칠을 이마에 달 띄우며 간다. 달은 언제나 찬란한 가난을 닮았다. 한동안 배고프고 또 한동안 배부르다 다시 배고픈 달. 장엄한 사육제다.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듭나기를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닥을 함께 기는 그림자 푸른 밤. 살 다 내리고 채우기를 몇 번 함께 기는 그림자의 눈이 푸른 밤, 지순한 보름달에 세상이 환하다. 지나가던 차를 멈추고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푸르스름한 지폐 몇 장을 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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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발버둥
발버둥 이서빈 열린 문은 반드시 닫힌다. 노인의 발치나 손끝에서 나오는 주름진 말들을 모아 지혜서를 만드는 초록의 문 밖. 지주의 말 속에는 짐승의 나이로 죽음이 자란다. 누전인지 정전인지 검은빛에 물든 가난. 죽음과 잠은 같은 종류의 무아지경 같은 것. 매일 이승과 저승의 집 한 채를 짓느라 발버둥 친다. 빛과 그늘이 씨줄날줄로 짜인 촘촘한 봄날은 하루 종일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바람을 타고 있다. 종달새 노래는 풍년 소쩍새 울음은 흉년. 허기진 땀구멍엔 소금기만 서걱거린다. 달빛이 키우는 소리와 별빛이 돌보는 소리가 같은 봄밤 아래서 자란다. 올챙이 울음과 어린 뱀 웃음이 회전문처럼 꼬리를 물고 돌아간다. 회전문에서 발버둥이 튕겨져 나온다. 발버둥은 발을 먹고 산다. 곰발바닥을 먹어 성이 차지 않으면 닭발을 먹고 뼈 있는 닭발은 뼈 있는 말 하는 사람의 몫이고 뼈 없는 닭발은 말랑말랑한 말을 하는 사람의 몫이다. 발가락으로 가장 낮은 수량의 셈을 배운 사람들은 다 지혜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