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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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두물머리에 와서 보다
두물머리에 와서 보다 이승하 이렇게 합쳐지는 물도 있는 것이다 어디서 발원한 물이기에 저 상류에서는 강의 모습이 부모한테 버림받은 포대기 속 아기같이 처량했는데 여기에 와서 늙은 어머니의 넉넉한 품이 되는구나 옷을 벗으면 등짝에 흉터가 덕지덕지 남아 있는 사내 젊은 날을 탄광에서 보내고 이제는 질통을 짊어지고 있는 저 사내가 술 마시고 눈 오줌이 강물 속에 섞여 있지 않다고 당신은 말할 수 있는가 그 사내의 에미가 가슴을 치며 흘린 눈물이 그 사내에게 술 따르던 여인이 흘린 눈물이 저 강물 속에 섞여 있지 않다고 당신은 말할 수 있는가 장맛비 지겹게 내리는데 술 마시던 사내와 술 따르던 여인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려 우산을 함께 쓰고 소용돌이치는 강을 본다 제기랄, 두물머리이니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합수해도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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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소설가 구보氏의 절망 - 두물머리에 와서 보다 외1
소설가 구보氏의 절망 이승하 출근하지 않는 남자 전업 소설가 구보氏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밤 열 시부터의 작업 소설 「용은 여의주를 삼켰다」를 최신형 기종으로 쓰고 있다 아니, 키보드를 두드려 부지런히 입력시키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야 비로소 소설 쓸 기분이 난다는 그는 자폐증 환자, 대인공포증이 있는 구보氏는 오늘도 외출하지 않는다 부지런한 구보氏 책 거의 한 권을 쓴 한 달 보름 동안의 노동 오늘도 컴퓨터에다 소설을 써넣는 한밤의 노동 컴퓨터 바이러스가 활동을 개시한 순간에 구보氏 졸고 있다 졸음이 몰려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그만 잠의 늪으로 하강, 세상의 음영이 달라진 순간 그의 의식은 깨어난다 입력해 두었던 소설은 온데간데없고 한 달 보름 동안의 노동은 완전히 헛수고 구보氏는 미칠 지경이 되었지만 아무런 위로의 말이 없는 컴퓨터 빛을 내는 두개골을 안고 구보氏는 오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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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별을 죽이다
별을 죽이다 이승하 영원히 빛나는 별이 있을까 어린 날, 외갓집 마당 평상 위에 누워 밤하늘을 보았다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아 공포에 질려 부르르 떨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경북 상주읍 화산리 외갓집의 뒷마당 하늘 향해 가지 쭉쭉 뻗은 감나무 앞마당 땅 깊이 한참 파내려간 우물 밤이면 펼쳐지는 별, 천지의 별천지 수백 알 열리는 감보다 많은 별은 무슨 시름이 있어 저렇게 눈물 글썽이는지 우물에도 빠져 있는 수많은 별은 무슨 아픔이 있어 저렇게 떨고 있는지 내 이마를 향해 달려드는 별들이여 어제 못 본 별이 오늘 찾아올 때도 있지만 별과 별 사이는 늘 멀어지고 있었다 막내이모, 외할머니, 중간외삼촌 차례로 돌아가시고 외갓집은 갈 때마다 상갓집 나와 죽은 이들 사이엔 별들 사이만큼이나 넓은 공간과 광년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