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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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무의식의 서사들 - 이장욱, 박상영, 김혜진 소설
엔진으로서의 무의식이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이장욱과 박상영, 그리고 김혜진의 소설을 통해 살펴봤다. 파묻힌 것 「양구에는 돼지코」는 세계의 불확실성이라는 이장욱식 패러다임으로 연결의 진의를 의심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치매 노인의 머릿속에서는 단절된 기억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잠깐 비운 사이에 어딜 가신 거예요? 나가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왜 또 나가셨어요?" 딸과 노인의 통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이것이 치매 노인의 서사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치매 서사가 기억상실의 모티프를 포함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장례식에 간 노인은 부의금을 내고 식장 안으로 들어간 다음 결혼식장에 대한 생각을 한다. 노인은 장례식으로 출발했지만, 결혼식장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믿을 수 없는 화자'가 아니다. 노인의 발언에 의아해하는 주변 인물들의 태도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이 아닌지 구분하는 단서가 된다. 노인은 오히려 진실의 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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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토르소’의 고독과 ‘관절의 힘’
물론 ‘나’라는 동일성이 반복적으로 해체되는 순간에 주목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이장욱의 시가 품고 있는 독특함이 완벽히 설명될 수는 없다. 이장욱은 그 일을 ‘물고기’와 ‘의자’, ‘인형’, ‘장난감’의 위치에서 행한다. “코인로커”(「코인로커」)와 “늪”(「늪」)을 상상하며, “등 뒤의 세계”(「뒤」)와 “세계의 끝”(「세계의 끝」)에 당도한 기분으로. 이처럼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서 말없는 사물이 되어, 이장욱은 ‘내’가 허물어지고 확장되는 순간의 불안을 담백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아니, 이장욱 시의 화법에 대해서라면 묘사라는 말보다는 지정(指定)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장욱의 간결한 시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의 시가 결국 어떤 구체적인 정념을 품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수많은 정념들을 어떤 구체적인 정황(더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단어’)을 통해 한꺼번에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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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문학신간 리뷰]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 이장욱, 『기린이 아닌 모든 것』(문학과지성사, 2015) 박인성(문학평론가) 이장욱의 소설 텍스트는 매우 당파적이다. 도발적인 첫 문장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문학에 있어서 지극히 일반론에 가까운 이야기다. 일차적으로 내가 여기서 말하는 당파적인 텍스트란 누군가는 읽어낼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읽어낼 수 없다는 의미다. 물론 단순히 텍스트의 (비)가독성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가 소설을 읽으면서 순전히 타인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거리(distance)를 취할 때는 절대로 읽히지 않는 맹점(盲點)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이장욱의 이야기는 당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