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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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사랑
"기왕 말이 나왔으니 『파한집』에 언급된 한 대목을 들추어 보면, 가야산에 숨은 최치원이 어느 날 아침 관(冠)과 신발만을 수풀 사이에 버려 놓은 채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두고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는 말이지. 그래, 혹자는 그러한 내용을 두고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이도 있긴 하더군. 그래, 그렇다고 쳐. 하지만 그건 너무 빤한 픽션이지 않는가. 나는 보다 논리적면서 실증적인 태도로 접근해 보고자 하네. 다시 말해 후대의 사람이 그러한 글을 남긴 배경이 무엇인지, 연유를 캐내야 한단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나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전에 자네가 보았던 미라를 기억하나?" 민 교수는 팔짱을 낀 채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자넨 그게 누구라고 생각하나?" 나는 민 교수의 미소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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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공개 인터뷰 나는 왜 제4회]삶의 짙은 그늘 속에서 리얼리스트를 꿈꾸는가_(이재웅소설가 편)
특별히 이 작품에는 ‘늙은 소년 화자’ 이준태의 형상이 이채롭습니다. 이 ‘늙은 소년’의 낯선 목소리는 자살 폭탄 테러범처럼 위협적이어서 독자를 불편하게 하거든요. 낯설게 하기와 리얼리즘이 결합된 형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런 화자를 설정하셨는지, 이 소설을 통해 구현하려 한 부정정신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 이 : 이준태를 형상화할 때 가장 유념에 두었던 것은 준태가 자신의 삶이나 감정을 막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물리적이고 물질적으로 바라봐 주길 원했다는 것이에요. 행동 문학적 성격이 강한 것일 텐데요. 평소에도 저는 소설을 쓸 때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내가 쓸 만한 소설인가 쓰지 말아야 할 소설인가를 재단하는데 그때 대입하는 키워드가 말씀하신 부정정신의 실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 쓸 때는 그런 것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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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2006년 시단의 결산과 전망
이들의 시를 서정시의 한 유형으로 보는 것은, 세계관의 문제와 시적 화자의 정황을 착종시킨 데서 오는 오류인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서정시는 세계관의 차원에서 모더니즘 시와 상대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바로 그 ‘서정시’ 이다. ‘미래파’의 유행에 밀려 서정시가 다소 주춤한 양상을 보였던 것 또한 2006년 한 해의 특징이다. 서정시의 위축 현상은 새로운 시인들이 수적으로 적고, 새로운 이슈나 경향 또한 발견되지 않음으로써 답보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차적으로 서정시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속성에 기인한다. 파격적인 실험을 거듭하는 모더니즘 시와 달리, 서정시는 유사한 주제와 태도를 반복한다. 따라서 새로움이나 놀라움으로 독자들을 흡인할 수 없다는 것은 서정시의 태생적인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