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8)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허공 노래 - 불이 살아 돌아왔다 외 1편
허공 노래 이진명 허공이래 허공에서 왔고 허공으로 간대 허공 아니면 태어날 수 없고 죽을 수 없대 허공이 다래 허공이 보고 허공이 듣는대 허공이 냄새 맡고 허공이 지절거리는 거래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구멍 다 허공이 저를 뜯어내 설치한 거래 허공이 주(主)래 머리카락 손톱발톱 허공이 찢어 붙이기 한 거고 오장육부는 허공이 저를 주물거려 복벽 흉벽을 쌓아 턱턱 던져 붙인 거래 척추 갈비 엉덩이 뼈 뼈다귀들의 모든 부속물까지 손 놀리는 거 발 쳐드는 거는 허공의 색다른 부양놀이인 거고 두정에서 항문까지 주(主)의 노래 허공이 치는 노래 허공의 채찍에 배꼽은 돌돌 팽이처럼 직립해라 일어서라 마지막 꺼꾸러져라 평생 허공의 채찍 소리 그러나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공공공 주(主)의 노래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게 뭐냐? - 단추와 초점이 맞을 때 나는 쉬었네 외 1편
이게 뭐냐? 이진명 그 무엇을 안 하기 위해서 이 무엇을 하고 있다 안 하는 그 무엇과 안 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이 무엇 이 두 무엇이 바로 ‘그것’ ‘이것’이 되지 않고 ‘그 무엇’ ‘이 무엇’으로 위장하고 있다 재미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렇고 그런 멍텅한 세계가 흐르고 있다 이, 그의 2界를 넘어 3界 4界 저, 어느가 더 더 남아 있다고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득의로 속살거리더라도 관심 옛날 같지 않아 별로 땡기지 않고 안 보면 죽을 것도 아닌데 안 하면 심한 소리를 들어야 되는 일이 있는데 46회분 외국 대하드라마를 세 밤에 걸쳐 다운받아 놓고 나흘째 컴퓨터 앞에서 붙어먹고 있다 大河 천지인이 나가신다 하루 10시간씩을 충성 근무 시작도 끝도 없는 大明의 천지인이 나가신다 이게 뭐냐? 이 뭣꼬?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단추와 초점이 맞을 때 나는 쉬었네 외 1편
단추와 초점이 맞을 때 나는 쉬었네 이진명 단추를 보네 셔츠의 일곱 단추 맨 위 목단추 하나는 풀었지만 아래로 여섯 단추는 일렬로 자로 잰 듯 여며 있네 너무 단정히 반듯이 꼭바르게 지하철 문 열리고 닫히자 앉아 있는 내 앞에 와 선 왜소한 청년 청년이 내 눈앞에 무심히 친 결 곱고 질감 좋은 소라색 셔츠 셔츠에 박힌 조그마한 눈 납작납작한 상아빛 연한 애기 별 여섯 모두 맑은 광택이 감돌아 있네 외따로 젖혀진 목단추 반 감춰진 그곳에서도 광택은 내리고 이토록 단정할 수 있을까 이토록 깨끗할 수 있을까 이토록 일렬로 이토록 틀림없이 여며질 수 있을까 이토록 바를 수가 있을까 없는 것처럼 바를 수가 잠긴 게 이토록 가벼울 수가 아름다울 수가 완전할 수가 위대할 수가 저절로 청년의 얼굴을 올려다봐야 했다 스물은 넘었을까 이제 막 스물일까 스물 삶의 안쪽에도 녹슨 체인은 철컥거리겠지 마른 안구를 비비며 나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 선릉역에서 내려 사람들을 만나 다시 약속장소 청주로 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