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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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이남동 터미널
홍 사장 마지막 가는 길인데 다 같이 인사는 해야지요. 있다 봅시다. 장 사장은 호기롭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한 손에 휴대폰을 쥔 채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계속 걸었다. 지난해 가벼운 폐렴 증상으로 홍 사장이 서너 차례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건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몇 달 전 마지막 통화를 할 때 홍 사장의 목소리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느닷없이 홍 사장 부고 소식을 듣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예상한 적이 없었다. 그 집이 홍 사장을 말려 죽인 거야. 사람 잡고도 남지. 터미널 정문 앞에 멈춰 서고 나서야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붙은 전단지와 현수막을 둘러보는 동안엔 잠깐씩 홍 사장의 죽음을 잊었다. 며칠 사이 현수막은 더 늘어나 있었다. 터미널 이전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느니, 사업시행이 미뤄지며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느니 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녀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현수막들을 올려다보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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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이 한 마리를 떠올리며」
이로 보아 노년에 이르러 어떤 일에 정열을 바치는 일만큼 값진 일은 없는 듯하다. 한 때는 존경받는 정치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처칠이다. 그가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던 것은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뒀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나이가 들면 지난 시간 얽매었던 삶에서 해방돼 새롭게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 게 로망이기도 하다. 이는 성인들을 위한 평생교육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것도 일조를 하고 있다면 지나칠까. 새해가 되면 도서관 및, 복지관 등에선 성인들을 위한 평생교육 강좌를 마련하곤 한다. 동네 곳곳에 걸린 평생교육 강좌 프로그램 안내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홍보물이 그것이다. 이것을 볼 때마다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글 쓰는 일 외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는 듯하다. 아니, 솔직히 여태껏 문학을 연인처럼 생각하다 보니 딴 일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면 궁색한 변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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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빨강이의 신기한 여행
이거 다 커피 찌꺼기로 만든 거야.” 사랑이 눈이 커졌어요. “커피 찌꺼기로 핸드폰 걸이도 만들어요?” “그럼. 한번 만들어 볼래?” 사랑이가 나를 옆에 밀쳐 두었어요. 나는 불안했어요. 누군가가 또 어딘가로 던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에요. 사랑이를 잃어버릴까 봐 옆에 꼭 붙어 있었어요. 사랑이는 곰돌이 틀에 커피 찌꺼기를 눌렀어요. 아줌마는 사랑이가 만든 곰돌이 틀을 오븐에 구워서 주었어요. 사랑이는 곰돌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봐요. 곰돌이를 손가락에 걸고서는 다음 부스로 향했어요. 옆 부스에는 글자 모양이 들어간 가방 전시회예요. 가게 이름은 ‘현수막 가방’이라고 쓰여 있어요. 사랑이는 그 가방이 또 마음에 드는가 봐요. “이것도 가방이 되는구나.” 사랑이랑 같이 가는 시장 놀이는 재미있었어요. 넓은 광장으로 나갔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더 큰 시장이 열리고 있었거든요. 사랑이는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공원 안은 무척 넓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