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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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서사적 기예의 세 가지 풍경들
작금의 서사적 조건을 살아 내는 작가로서의 각기 나름의 섭생들임에 분명하다.《문장 웹진/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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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호텔 해운대
수정은 담임선생에게 혼나는 중학생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 부장이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만이 이 상황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괜찮나?" 옆자리의 최 디자이너가 말을 걸었다. 자신은 너무 많이 겪은 일이어서 이제 익숙하다며 수정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수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각을 한 건 제 잘못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지각과 맞바꾼 제주도 특급호텔 숙박권이 있으니,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싶었다. 신라호텔? 롯데호텔이나 해비치호텔인가? 특급호텔이면 5성급 호텔임이 분명한데······. 혀끝을 간질이는 초콜릿 같은 단어들을 애써 입속으로 삼켰다. 달콤한 호텔들이 초콜릿 속에 박혀 있던 알사탕처럼 녹지 않고 남았다. 색색깔의 사탕알갱이가 입안을 굴러다녔다. 수정은 혓바닥 위에 사탕을, 아니 호텔을 올려놓고 천천히 녹여 먹었다. 아이스커피 속의 각얼음을 깨물듯 아삭아삭 소리 내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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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신을 보는 자들은 늘 목마르다
그렇다면 새로 수정된 시구는 폭력에 대한 보다 성공적인 재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정된 후의 시구에 폭력의 주체로 등장하는 ‘미아’는 다른 뜻의 미아(迷兒)로 짐작된다. 토박이가 아니며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미아’의 다른 의미와 ‘길을 잃고 미혹에 빠진 젊은이’라는 확장된 은유를 염두에 두더라도, 이어지는 시구를 읽어보면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죽었어. 누군가의 아버지를 죽이면서”라는 구절에서 폭력의 주체가 남성임은 짐작된다. 그러나 ‘젊은 남자’를 ‘미아’로, ’아녀자‘를 ’사람들‘로 바꿀 경우에 표현은 중의적이 되기보다는 중립적으로 얼버무려진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의 주체와 폭력의 희생 대상을 명시적으로 드러낸 수정되기 이전의 시구가 4․3 항쟁에서 발생했던 폭력의 한 양상을 오히려 거칠지만 또렷하게 상기시켰다고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